저녁의 꼴라쥬
모든 지혜자들의 공통점은 단순성에 있다.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단순성. "Gott hat den Menschen aufrichtig gemacht; aber sie suchen viele Künste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은 많은 꾀를 낸다, 전도서 7:29)" 삶에 잡동사니가 많고 염려와 근심이 많음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욕심은 추구하는 것을 얻고자 꾀를 내고 꾀는 단순성을 복잡하게 일그러뜨린다. 욕심을 내려놓든지 평안함을 포기하든지 사람은 둘 중의 하나만 가질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둘 다를 얻고자 해서 늘 넘어진다. 바울은 말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0:23-24). 하나님..
미니멀리즘 에세이를 듣는데 물건을 비운다고 저절로 삶이 변할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듣고나니 오히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워가면서 단순성의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단순함이 좋다는 것을 알아서 비우는 것은 더 지혜로움의 결이 아닌가. 정직성과 지혜로움은 함께 간다는 잠언의 말처럼 단순성과 지혜로움은 해석학적 순환 안에 들어가 있다. 차라리 자유해지면 물건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쓰고 없어도 있는 것처럼 넉넉하다. 노트북의 내용을 가볍게 하였더니 삶의 공기질이 쾌청해져서 좋았다. 조이패드를 그래서 바자회에 내놓았더니 아무도 사가지 않았다. 녀석을 다시 집에 가져오는 것이 여간 내키지 않았다. 복잡하고 명민하게 문제를 풀려고 하면 계속 그 복잡성의 망에 거..
미니멀리즘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는 언제나 하나이다. 단호해지지 못해서이다. 삶에서 나를 부여잡는 것들의 망에 계속 놓여 있는 이유는 애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 네트워크 안에 놓고/놓여지는 이 행위를 나는 중간태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스스로 실행하는 것인 동시에 바깥에서 강요되는 어떠함이다. 그러한 것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외부의 힘의 도움을 또한 받아야 한다. 미니멀리즘은 언제나 단호하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외골스럽다. 그로 인해 볼멘소리를 듣게 되지만, 결국 많은 사람이 그 방향성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또한 발견하고, 그 길을 인정하거나, 떠나거나 한다. 오랫만에 교토에 갔는데 모든 누나들의 패션이 4년 전과 동일하게 한결같아서..
오랫만에 도서관에 온다. 워드로 작성해놓은 아우구스티누스 단상들이 컴퓨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셨다. 클라우드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컴퓨터가 영원할 줄 알았나. SSD에 넣어두었던 것이 SSD와 함께 소멸하고야 말았다. 스스로 이렇게 빈틈이 많았나, 하면서 오늘은 자책도 많이 한다. 한 달만에 목사님을 만났다. 주일 설교를 듣는데 기마병 같이 억세다. 멀찌감치 앞으로 달려나가는 이를 오랫만에 만나니 도전도 받고 반성도 된다. 독일에 돌아와서 일주일간 아침 저녁 로마서 강해를 했었는데 목사님깨서 갈라디아서로 설교하시는 내용이 나의 것보다 더 쌩쌩하고 강력하다. 사양 차이가 많이 나는 컴퓨터 같이 느껴진다. 또 이 날의 찬양인도는 어찌나 맥북처럼 고요하고 힘이 있던지. 인도하는 집사님께서 힘을 빼..
쓰던 맥이 운명하셨다. 팬소음이 점점 심해지더니 전원공급마저도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로직보드가 망가진 모양이라 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새 것에 가까운 2017년형 맥을 사기로 결심하고 프랑크푸르트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전에 쓰던 주인이 간호사라 실기스 하나 없이 깔끔하다. 아아 조심스러워라. 다시 운영체제를 깔고, 아이클라우드를 연동하니 온갖 잡스러운 이전 파일들이 와이파이를 타고 날아와 컴퓨터에 내려앉는다. 에버노트에 기입한 글들도, 드랍박스에 든 파일들도 어지러진 방처럼 느껴졌다. 새 컴퓨터를 사서 그런지 이전 것들이 추저분하게 느껴진다. 서랍정리를 하듯이 폴더를 만들고 비울 것을 비우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미니멀리즘과 정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누군가 버리기 위해서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