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며칠 쉬었더니 편도선이 가라앉는다. 기쁜 일이다. 아픔은 몸이 보내는 정직한 신호다. 멈춰. 약을 먹고, 몸을 놓아두는 수 밖에 없다. 봉기를 진압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연스러움만큼 좋은 것은 없다. 흘러가는 대로, 지나가는 대로, 놓치는 대로... 글을 쓰면서 말줄임표를 자주 쓰는 성격은 아니다. 아는 목사님은 늘 말줄임표를 글에 넣으신다. 그분에게 느릿느릿, '생활'이라는 것을 배웠다. 말을 고르면 고를수록 말이 고르게 고와진다. 그날 저녁에 또는 다음날 저녁에 자꾸 고치는 글은 정갈한 음식같이 한결 개운해진다. 말을 고르다보면 말을 꼭 줄이게 된다. 말 속에 불필요한 말들이 참 많다. 오랫만에 예전 살던 마을을 방문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정원을 바지런히 가꾸고 있다. 저 정원은 할머니의 세계..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적 인식이 도달할 수 있는 것cognitio naturalis을 믿음의 신조들articuli fidei과 날카롭게 구분했고, 후자를 다루기 위해 서론praeambula을 할애했다. 다른 한편으로 토마스는 그의 에서 삼위일체론을 포함한 신론을 일반적인 논의 과정 속에서 다루면서 그것을 세계의 제1원인인 신 개념으로부터 유도하고 발전시켰다. 자연신학과 초자연신학의 두 가지 인식론적 질서는 아직 완전히 구분되지 않았다. 후기 토마스주의 즉 바로크 스콜라 철학과 신 스콜라 철학에 이르러서야 자연신학과 초자연신학의 "이층-도식"이 완성되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가톨릭신학에 의해서도 비판받고 있다. 이 도식이 바로크 스콜라 철학과 구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 계시신학의 상대 개념으로 재등장했을 때,..
1 Just as people can be efficient without being loving, we all know people who are loving but not very efficient. Think for a moment about the most loving people you have known. By our modern criteria of success, how efficient were they? The people who have taught me the most about love have had more than their share of what we call dysfunction: self-doubt, suffering, and failure. I think of Bro..
제대로 한 것만 남는다. 지금까지 만난 나의 멘토 중 제대로 된 것을 전수해준 분들의 것만 나에게 남아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것밖에 전해줄 것이 없다. 올바르게 한 것만 가르쳐줄 수 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줄 수 없다. 그것이 어쩌면 바른 정신을 이어간다는 것일지 모른다. 정신은 이어가는 것이다. 내가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몸으로, 감각으로 기억해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작업은 치열하게 벼려낸 이성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고민이 아니라 연구를 통해서 진척을 이루어야 줄 것이 있는 사람이 된다. 이런 층위의 생각을 하다가 다음 국면에는 저런 층위의 생각을 하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젊을 때에는 한 바늘에 꿰어져야 그것이 옳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정직하고 투명하다면..
모범생이 실족하면 금식 외에는 답이 없다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창공을 활강하던 알바트로스가 추락하면 그 큰 날개는 걷기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 그렇게 뒤뚱뒤뚱 거리며 땅 위를 걷는 것은 알바트로스에게는 비참이다. 왜냐하면 그의 지어짐은 땅 위를 걷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 위를 훨훨 나는 것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땅 위를 걷고자 하면 오히려 육중한 날개는 장애처럼 느껴질 따름이다. 기도를 하는 자는 기도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답이냐. 그 요청을 받는 사람에게는 그러하다. 다른 여러가지 길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내 길이 아니면 나에게는 길이 아니다. 사람들은 갑판 위를 뒤뚱거리며 걷는 알바트로스를 비웃는다고 보들레르는 노래했다. 내 길이 아닌 길을 걸으려 하면 열매도 없고 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