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어제 오늘 예나에 와있다. 예상한 만큼의 연구는 하지 못하고 대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 위주로 보냈다. 오랫만에 보면 사람들은 반가워서 놓아줄 줄을 모른다. 나도 그 마음의 소중함들을 알기 때문에 새침하게 나의 일로 쉽사리 복귀하지 못하곤 한다. (하지만 아마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유폐되어질 예정이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렇게 괄호 안에 진심인것 처럼 적어놓아도, 당장 내일 점심에도 교제가 있고, 내일 모레 점심에도 그러하고, 글피에도 그러하다. 아아, 늘 그러하다. 뭐, 나쁘지 않다. 아직 나쁘지 않다pas mal는 감각이 있는 것도 은총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바쁜 것에서 은총을 누리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그러함에서 은총을 누린다. 서로 섞이지 않으면 그걸로 좋다. 나는..
나는 정말 기쁘다. 제자들이 바로 서게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하나님이 듬직하고 이 사역을 하는 것이 기쁜 때도 없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그래서 어떤 일보다 값지다. 오늘도 제자 한명을 만나 물었다: 내가 너에게 부드러운 말을 해주기를 원하니 아니면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책망하기를 원하니. 정말이지 한번에 한명밖에 케어할줄 모르는 나는 바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성보다 사랑이라고, 한번에 한명이 아니고는 사람을 전폭적으로 서포트해주고, 힘을 부여해주고, 위로해주고, 견책해주고, 바로 세워주는 방법을 나는 찾아볼수가 없다. 하나님은 내가 버릴때 새로운 것으로 주신다. 이삭이 어딜 가든지 판 우물에서 물이 나듯이, 나는 최근에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파는 ..
종혁, 쉬지마. 쉴틈없이 달려가. 알아. 힘들고 험악한 암벽과 같은 길이야. 그러나 나는 너를 믿는다. 네가 그 험한 길을 거쳐서 반드시 나에게로 이르를 것을. 나는 너를 피었다 지는 꽃으로 만들지 않았어. 나는 너를 늘 푸른 상록수로 불렀단다. 내가 얼굴을 가리고 숨어있을때 반드시 나를 찾고 찾아내렴. 너는 알게 될거야. 내가 숨은 것이 아니라 네가 그만큼 나에게서 마음이 멀어져 있단것을. 네가 세상으로 나간만큼 나는 숨은 것처럼 느껴질거야. 그러나 거기서부터 달려와. 절대로 쉬지말고, 뒤를 돌아보지말고, 낙심하지말고, 전력질주해. 나를 찾고 찾는 사람만이 나를 만날거야. 영혼의 어두운 밤이 와도 끊임없이 나를 찾고 내 사랑이 어디 있냐고 내 얼굴을 보여달라고 간구하는 그 뜨거운 타는 사랑을 나는 원해..
0. 나의 예배를 받으소서 1. 그럼에도 불구하고 1-1. 기도 2. Power in the blood 3.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땐 4. How great is our God 4-1. 기도 5. How great is our God refrain +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refrain 봉헌. 나의 예배를 받으소서 1.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찬양으로 다시 한번 도전해보라고 하셨다. 나의 연약함을 가리우는데에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깊고 넓은, 진실한 은혜를 참되게 고백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지난주와 달리 찬양 안에, 특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문구 안에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와 사랑에 대한 선포의 힘이 느껴졌다. 1-1. 그래서 우리를 우리 모습에도 불구하고 받으시는 주님 앞에 ..
일어나서 기도와 묵상을 하고, 해가 4-5센치 올라갈 때까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본다. 머리를 디폴트값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그러면서 이번에 교토에 가도 특별한 일이 없이 어슬렁거리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의 지도교수님도 나처럼 나사가 하나 빠진 스타일이어서 둘이 있으면 참 편하다. 말도 안되는 농담으로 서로 한참을 웃고, 말도 안되는 은유와 비유와 언어유희의 극단을 달린다. 그러다가 연구주제라든가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만 순간적으로 서로 진지해지고, 다시 헛소리로 돌아가는 패턴이다. 그림을 그릴때 나는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전체적인 소묘라고 할까, 그런 것을 할 때는 지나치게 구조적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냥 내가 바라보는 인상 자체를 담아와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서 나오는 선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