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I’ve found a friend in Jesus, He’s everything to me, He’s the fairest of ten thousand to my soul; The Lily of the Valley, in Him alone I see All I need to cleanse and make me fully whole. In sorrow He’s my comfort, in trouble He’s my stay; He tells me every care on Him to roll He’s the Lily of the Valley, the Bright and Morning Star, He’s the fairest of ten thousand to my soul. He all my grief h..
한국에 존경하는 목사님 한분이 당신이 생각하기에 영원은 하나님 안에서 보낸 공동체적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오늘 기도를 하면서 깨닫게 하신 통찰 하나는, 내가 정직함과 거룩함으로 주 앞에 나아가는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전적으로 새로운 시간이 형성되어간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정직한 사람은 믿는다고 고백을 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믿는 "새로운 현실성"과 여전히 변하지 않는 "옛 현실성"이 충돌할 때에 끊임없이 분투하고 투쟁한다. 이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늘 권면하였다. 믿음은 말에 있지 않고 그의 삶에 있다.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고 내가 분투하는만..
교회에서 청년들을 담당하게 되면서 나는 저 나이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썼었는가, 문득 궁금해져서 그 나이에 썼던 글들을 찾아서 읽었다. 놀랍게도 지금 분투하고 있는 테마와 상당부분 일치했다. 정직함과 거룩함, 이성과 감성, 긴장과 이완의 양극성 안에서 10년 전의 나는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나 대견한 것이 있다면 죄다 예수님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젊은날의 꿈과 갈망을 철없이 표현하는 풋내가 풀풀 나는 어린 청년이었던 것 같다. 뭐랄까, 저 어리숙함 뜨거움 앞에서 미소짓지 않을 수 없달까. 대체적으로 글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치열하게 정직함으로 승부했다. 거룩함을 추구하고 추구했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경직되어지는 것일까? 왜 나의 거룩과 정직은 자연스럽지 않은..
주여, 저는 그동안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하기도 하고, 치고 오르기도 했습니다. 차오르기도 하고 기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당신은 그러한 나를 통제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자유는 상황 가운데 속박되거나 유폐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들을 넘어서고 솟아오르는 직선적인 운동에 가깝습니다. (저는 누군가 저에게 직선적인 영성의 힘을 가졌다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 나의 육신이 편안하고 넓은 길로 가려고 할 때에, 나는 내 영이 광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 나를 광야로 부르실 때 기쁨으로 나아가리라 ' 그 노래는 자기 전에도 울리고,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도 울렸습니다. 내가 그릇된 생각으로 행동할 때에도 울렸습니다. 당신은 복종이 아니라 사랑의 순종의 자유를..
오늘의 나는 누구입니까? 어제 나는 당신과 골리앗을 무너뜨렸습니다. 단단하게 무장된 마음으로 당신 앞에 나아갈 때, 왜 당신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울음을 꺼내놓는 것입니깍? 내 안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울음이 있길래, 나조차도 마개로 봉해놓은 그 깊고 깊은 굴의 여로를, 당신은 왜 오늘도 여전히 탐색하길 원하십니까? 내 안에 한번에 들어오셔서 헤집지도 않으시고, 나의 굴 밖에서 그다지도 다소곳하게, 묵묵히 서계신 것입니까? 주여, 그 주님 앞에서 오늘도 나는 나의 무장된 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당신 앞에는 내 맨 얼굴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당신은 말의 힘이 억센 것이나, 용사의 창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은 눈물과 콧물로 바닥을 투명하게 칠하는 나의 투명한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