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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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핑거링

땡큐, 땡큐 땡큐 땡큐

jo_nghyuk 2009. 10. 24. 01:26
라이브 부틀렉들은 정규 앨범에 대한 각각의 다른 이펙터가 걸린 ep앨범들이다. 어느 앨범에서는 보컬의 화음이 달라지고, 악기의 연주가 길어지거나 보컬이나 기타나 돌연 소리를 꽥 지르기도 하고, 헐떡이거나 웃거나 실수하거나 신음하거나 화를 내는 등
정규 앨범의 정갈함에 도전하여 그것을 긁고 잘라내고 다시 붙이는 새로운 꼴라쥬와 같은 양상을 보인다. 앨범이 6장이라면 셋리스트에는 1번이 6집, 2번이 2집, 3번이 4집 이런 순으로 마음껏 트랙리스트의 트랙들을 열차가 오기전에 방향을 조절하듯 변형시키고 이어 붙일 수 있는 것이다. 관중은 이 즐거운 열차에 타 마음껏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산타 바바라 공원의 외침이 다르며 하이네켄 홀의 절규가 다르고 수퍼 아레나의 환호의 소리의 종류가 또한 다르다. 부틀렉마다 보컬과 연주는 정규앨범의 그것보다 어수룩해질 때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놀랍고 새로운 음원을 돌연 선사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이 때는 밴드도 그것에 힘을 받아서 그 날 전체의 트랙들이 반짝반짝 새로운 영감들로 장식되고 맛있어지는 유쾌하고 풍성한 부틀렉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매니아 리스너들을 이것을 속칭 "대박 레어 부틀렉"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구석구석에 보석같은 유머러스한 순간들을 많이 숨기고 있기도 해서 헤드폰을 끼고 듣다가 혼자서 낄낄 웃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떤 여자가 보컬의 마이크에 들어가 스피커에서 들릴 정도로 크게 꺄아악 비명을 꽥꽥 지르다가 보컬에게 조용히 해 이 정신나간 여자야라는 꾸지람을 듣는 살짝 뻘줌한 순간이나, 대박 레어 트랙에 대해 "땡큐 땡큐 땡큐"를 연발하는 남자에게 보컬이 "땡큐 땡큐 땡큐"로 화답하는 훈훈한 순간들이 수많은 부틀렉의 노래 끝자락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것이다. 부틀렉은 그로써 수많은 skit을 숨기고 있는 ep이며 동시에 새로운 eq (이퀄라이저)가 된다. 부틀렉들은 서로 다른 이퀄라이저의 문양들이다. 베이스가 강한 부틀렉이 있고 보컬이 죽여주는 부틀렉이 있으며 드럼이 숨막히게 부서지는 부틀렉이 있다. 아니면 믹스된 라디오 음원이나 샘플링들이 기가 막히게 절묘한 부틀렉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라디오헤드의 The national anthem이 국가 별로 그들의 라디오 주파를 잡아 믹싱해주는 것들을 부틀렉별로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본 공연에서 사무라이가 소리를 지르고 칼을 휘두르는 음원을 믹싱해서 혼자 초승달같은 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했던 경험이 있다. 이것은 그대와 나의 경험을 풍성하게 만드는 뉴트리언트) 그래서 공연을 보러 오는 이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퀄라이저 파도 무늬를 서핑하는 서퍼들. "오 이날은 이 부분이 절묘한 일렁임이 있는데?" 땡큐땡큐땡큐는 바로 그러한 순간에 터져나오는 감흥이다. 한방울에서 소나기가 터져나오듯이 이 땡큐의 한 반응에서 환호와 갈채의 홍수가 터져나온다. 이것은 동시대에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이며 동시에 예술가의 성실과 진정성에 대한 리스펙트의 표시이다. 땡큐, 땡큐 땡큐 땡큐



Radiohead Santa Barbara, CA 공연
Cymbal Rush가 끝나고 한 남자와 톰의 "땡큐 땡큐 땡큐"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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