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빛 (3)
저녁의 꼴라쥬
백금같이 명징하던 해가 호박죽처럼 초라해지는 시간 왕자가 거지가 되고 늑대가 개가 되며 나약해지고, 깨지고, 부들거리며, 우울하고, 어둡고, 괴로워지며, 쥐어짜는 시간 사랑에 빠진 이들의 심장처럼 곤죽이 되고, 과부하가 걸린 노트북처럼 버벅이고, 방금 꺼진 형광등처럼 놀란 맥박들이 어리둥절하고, 조용한 확신으로 기쁨의 칸타타를 흘려보내던 정원이, 시끄럽도록 슬픈 혼혈아들의 뉴올리안즈 재즈 놀이터로 변한다 윤곽이 흐릿함에도 질료는 그대로 있고 각자가 차지한 공간도 침노당하지 않았으나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세계는 비로소 벌거벗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둠 속으로 당신의 조각들을 넘겨주기 전에, 아직 점멸하는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처럼 의식과 기회가 남아 있을 때에. 윤곽선과 흐릿함이 동시에 살아 있는..
모네에게는 온화함을 잃지 않는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향한 균형감을 유지하지요. 파우스트처럼 균형감을 일부러 잃어버리는 화가도 있습니다. 재구성을 위한 모험을 하는 것일텐데 여력이 안될때 바닥에 나뒹구는 빛의 파편만 남게 됨을 보는 것처럼 무안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모네는 참 온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온화한 균형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보이지요. 그의 그림에서 탐욕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우리는 빛의 움직임 중에 있는 일렁이는 색조를 경험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는 철저히 빛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화가였으며, 그래서 전체 구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빛을 따라가다 보니, 그의 색조는 어느덧 희미한 파스텔 톤이 되었지요. 그의 그림은 무엇 하나..
맑은 소금이 될수록, 그 결정이 순수해지고 순결해질수록, 상한 것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따금씩 한적한 곳으로 가시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던 순간의 그의 감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지쳐 있는 것이다. 모든 상해가는 것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그에게로 다가와서 그로부터 소금을 얻어가듯이, 그는 상하지 않는 것을 타자에게 주고 자기는 상해간다. 그는 멸하지 않는 빛을 타자에게 주고 자기는 침침해간다. "오직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참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빛을 나누어주셨다. 사람들은 기쁨과 활력을 얻어서 돌아간다.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돌아간다. 그들은 자기의 필요를 채우고 돌아간다. 등을 돌리는 것이다. ** 예수는 제자들에게 물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