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자기만의 방 (3)
저녁의 꼴라쥬
현대인, 특별히 도시인에게 사유가 결핍된 원인은 사유할 공간이 없어서이다. 자연의 부재이기도 하고, 비언어적인 감각을 배양할 장소의 부재이기도 하며, 세계 안의 오솔길을 단독자로서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기만의 방은 있을지 몰라도, 자기만의 넓은 장소는 없다. 모든 공원과 숲은 사람들로 우글거린다. 너에겐 자연의 움직임보다 온갖 기계들의, 기계적인 지나친 움직임들이 부딪히는 그곳이 공간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은 공간이라 할 수 없다. 그곳에서 너는 모든 타자들을 기계적인 비존재로 인식한다. 이방인은 너에게 생명으로 느껴지지 않고 적대적이거나, 무관심한, '세계 밖' 존재로 여겨진다. 너는 타자들을 그곳으로 몰아낸다. 너조차도 철저히 생명의 리듬이 아니라 기계의 리듬에 프로그램되..
만일 여성이 글을 썼다면 그녀는 공동의 방에서 써야만 했을 것입니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았지요. 그곳에서 시나 희곡을 쓰는 것보다는 산문과 픽션을 쓰는 것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 집중력이 덜 요구되니까요. 제인 오스틴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그런 환경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녀의 조카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어떻게 숙모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루어낼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왜냐하면 숙모님에게는 종종 찾아갈 만한 독립된 서재가 없었고, 또 숙모님이 쓴 작품의 대부분은 공동의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방해를 받으며 쓰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감수성은 공동 거실의 영향을 받아 훈련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의 감정이 그녀에게 인상을 남겼고, 개인들의 관계가 항상 그녀의 눈 앞에 있었지..
방문을 닫고 나면 정말 혼자인 듯하다. 그리고 더욱 내면화되어지기 쉽다. 외부의 문이 닫히고 비로소 나의 내부에 시선을 돌렸기 때문이다. 릴케였던가. 눈은 외부의 창이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내부의 창이열리게 되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고. 이곳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모든 여성 작가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남성 작가는 당시 모두 가지고 있었던) "자기만의 방" 을 소유하게 되었다. 정확히 묵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조용히 창 밖을 보며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거나 창문 틀에 앉아 기타를 치기에 적당한 크기의 방이다. 네덜란드 집의 창문은 매우 넓다. 창문을 열면 내가 집 안에 있다기 보다는 외부로부터 단지 창 하나를 두고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그래서 들게 된다. 외부로부터 단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