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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벌써 봄이다. 강아지처럼, 또는 두렴없는 어린이처럼 봄은 나에게 성큼, 다가와 품에 안긴다. 봄에 대한 기다림은 참 길었는데, 봄이 성큼, 다가오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벙벙하기도 하다. 도서관 홀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 재미있다. 그들은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아 시간이 정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착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조용히 움직이지 않는 저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신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삶의 습관으로 견실히 자리잡힌 것이리라. 바이마르에 이사오고 난 후에 같은 도서관, 같은 산책, 같은 연구의 리듬이 반복될수록 단정한 만족감을 느낀다.도서관에는 내가 사랑하는 드가의 화집에서부터 존경해 마지않는 후설의 저작까지 적당히 빼곡하게 꽂혀 있다. 홀에 앉으면 나의 배후를 제외한 ..
오늘은 도서관에서 연구를 하다가 Mensa am Park에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지긋이 혼자 거니는데 해가 구름에서 나올때 나도 모르게 '아아'하며 무심코 소리가 나온다. 나무에서 움이 트고 순이 나는 것을 보았고, 공원 길을 따라서 산책하듯 멘자로 향했다. 파스타를 시키고, 샐러드로 올리브, 파프리카, 토마토, 피넛, 참치등을 담아왔는데 3유로가 조금 넘는 가격이 나왔다. 담백한 기분이 들었달까, 무튼 차분히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공원 길을 따라 내려와 흐르는 강을 멍하니 바라보고 지근거리에 있는 도서관의 카페테리아에 고양이처럼 숨어들어가 온화한 할머니에게 커피 한 잔을 받아 홀짝거리며 창 밖을 보니 햇살 아래서 연인이 포옹을 하고 있다. 잘 조성된 공원 안을 거닐때면 나는 최초의 행복감을 느꼈던 ..
지인과 카페에서 이야기하다가 무심코 책상을 스윽 쓰다듬는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커피 잔을 감싸쥐는 습관은 언제부터였을까? 잔 자체의 온도가 아니라, 뜨거운 무엇을 쥐고 있다는 데서 나는 묘한 위안을 얻는다. 나의 유년기는 서러운 겨울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차디찬 방바닥 위의 얼어붙은 개구리처럼 꼼짝을 못하고 수일을 버티다가, 횡단보도 건너 주유소에 기름통을 들고 가서 반정도 담아오면 그것으로 며칠을 버티곤 했다. 하도 기름을 오랫동안 넣지 않아 보일러가 망가진 날에도 내 기억에 아버지는 낙천적이셨다. 어두운 날에는 유머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훗날 군에서 죽음 한발짝 옆에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서러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면, 이상하게 저편에서 꼭 설레임의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