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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더 가지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무언가를 더 가지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 자체가 불행이다. 자족하는 마음은 결핍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된다.사람은 지루함을 피해 소일거리를 찾는 본성이 있지만 행복 자체를 위해 일락을 추구하는 정신에는 쉼이 깃들지 못한다. 약간의 지루함은 오히려 창의적인 놀이의 동기가 되고 약간의 결핍은 생의 리듬을 담백하게 매듭짓는 마디가 된다.
우리는 죄를 이기고 싶어서, 의지를 사용한 나머지 경직이 될 때가 있다. 이때에 사용한 의지는 데이비드 베너가 지적하듯, "사랑을 앞선 의지"이며, 내 마음을 질식시키는 의지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또한 위험의 도랑을 본다. 우리가 갈망이라고 말하는 것이, 제랄드 메이가 말한 것처럼 "정화된" 갈망이 아니라면, 갈망만을 주장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주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주장한다는 것은, 바울이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서 표현하듯이, "내 뜻대로 되고자 하는 기대"이다. 내 뜻대로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하고, 내 뜻대로 상대방을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바램은 기대이다. 우리는 기대가 아니라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풀어주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풀어준다. ..
참 자유는 내가 그것을 붙들고 고집하지 않을 때 주어집니다. 내가 집착하는 순간 나는 자유가 아니라 구속을 체험합니다. 중독된 의존성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은 그 중독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혼도 참된 자유를 원하지만 우리는 영혼은 곧 육신입니다. 육신은 여전히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묵상해보았습니다. 회개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죄를 이길 수 없고 도리어 죄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임을 자복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위로부터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일상에서 매일매일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죄에 대한 중독의 의존성에서 하나님에 대한 자유의 의존성으로 돌이키게 해달..
날마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것. 그것은 스스로의 욕망과 욕구대로 사는 것을 찢는 것이고 도려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하필 생식기의 포피를 자르게 하시는가? 우리 욕구의 가장 강렬한 한 부분을 왜 그분은 잘라내시는가? 나의 욕구와 하나님의 뜻이 그만큼 반대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날마다 스스로의 마음의 포피를 벗기고, 찢고, 잘라내는 고통이 없다면 그는 이미 훈련병에서 이탈한 사람일 것이다. 하기 싫은 것, 성가신 것, 부담되는 것, 어려운 것을 피하기만 한다면 그는 이미 탈영병의 신분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모두가 훈련을 받기 위해 그 섬에서 떠나고 있는데 나 혼자 그 섬으로 여객기를 타고 편하게 관광을 가려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소명을 버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죽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