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연필의 간 (9)
저녁의 꼴라쥬

4시까지 연구를 하다가 머리 속에 부드러운 것이 다 고갈된 상태가 되어서 커피를 한잔 마시러 도서관을 나섰다. 커피를 다 마시고 건너편에 화랑이 눈에 띄었다. 유화 그림들이 차창 안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색이 있는 것들을 보면 이상하게 위로를 받는다. 나는 내 그림에 색을 칠한 적이 없다. 색감은 정서나 기분을 표현하는 것인데 나는 줄곧 스케치만 해왔었구나. 나의 고모는 화가였다. 고모가 마당 벽에 커다랗게 유화를 그렸을때, 그것을 보고 최초로 그림을 멋지다고 느꼈다. 당시의 나는 초등학생 아니면 중학생이었고, 고모는 정원사처럼 회색 벽을 초록 정원의 나무와 강으로 수놓았다. 내가 그림을 들고 가서 보완해야 할 부분을 물으면, 고모는 그냥 그대로가 좋다고 늘 말했다. 그냥 그대로가 좋다고. 카페 건너 화..
모네에게는 온화함을 잃지 않는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향한 균형감을 유지하지요. 파우스트처럼 균형감을 일부러 잃어버리는 화가도 있습니다. 재구성을 위한 모험을 하는 것일텐데 여력이 안될때 바닥에 나뒹구는 빛의 파편만 남게 됨을 보는 것처럼 무안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모네는 참 온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온화한 균형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보이지요. 그의 그림에서 탐욕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우리는 빛의 움직임 중에 있는 일렁이는 색조를 경험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는 철저히 빛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화가였으며, 그래서 전체 구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빛을 따라가다 보니, 그의 색조는 어느덧 희미한 파스텔 톤이 되었지요. 그의 그림은 무엇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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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trecht, NL Kadijkesplein, AMS, NL NEMO, AMS, NL UofN Commissioning day, Kiev Danny Lehman, UofN tabernacle, Kiev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큰 메리트 하나는 아무 대화를 하지 않고도 서로의 얼굴을 샅샅이 뜯어볼 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서로 큰 친밀감과 인터랙트interact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은 슬펐다. 나는 내 안에 짐승같은 비린 울음을 메스껍게 삼키며 고아원을 나섰다. 내가 그렸던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울렁울렁거렸다. 여동생같은 아이들. 어떻게 이 아이들을 버릴 수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내 여동생을 삼고 싶은 Aliona알료나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는 알료나를 위해 반시간이 넘게 portrait를 그려주었다. 4B에서 2B로, 1H에서 다시 F로. HB로. 두툼한 지우개와 단단하고 뾰족한 지우개를 정성스레 번갈아가면서 그녀의..
작년에 그림과 눈물이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라는 첫 문장이 무척 마음에 와 닿았어요. 또 그림 앞에서 울어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소재와 제임스 엘킨스의 독특한 이력에도 매력을 느꼈고요. 이 책은 설문을 토대로 쓰여진 글이라서 읽고 있는 이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는 예술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걸 쑥스러워하죠. 감동이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감동의 눈물조차도 타인의 시선을 느껴야 하는 데서 오는 억압도 한 몫 한다고 봐요. 이 책을 읽으면 그런 무의식적인 억압이 풀리는 느낌이 듭니다. 마크 로스코의 텍사스 예배당에 걸린 그림 앞에서 울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나도 당장 그 그림을 보러 가고 싶다는..
Little babies'eyes eyeseyes Little babies'eyes eyeseyes Those are future of this nation @ Park of Ternopil, Ukraine
오른쪽 그림은 바니타스라고 하는 정물이다.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왼쪽 그림에는 포동한 아이가 마른 해골펴를 지배하고 있다. 로마인의 모습처럼 그는 해골 위에 (조상 위에) 앉아 있다. 그 해골은 아이가 기어나온 집이기도 하다. 비누방울을 아이는 날리고 있는데, 방울은 아이의 살처럼 포동하다. 북실한 아이의 머리타래의 풍성함, 머리 위에는 곱슬을 닮은 구름이 떠있다. 풍성하다. 아이가 부는 비눗방울은 곧 터지게 되어있다. 아이는 알지 못한다. 그는 비눗방울을 불고 있지만 그가 기댄 해골처럼 그가 부는 것은 곧 파이프담배의 연기가 되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비눗방울 같은 그의 눈 역시 텅 비게 된다. (우측의 해골 정물을 보라. 튤립도 살도 모래시계도,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죽음의 법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