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십자가 (5)
저녁의 꼴라쥬
"여러분은 이 세대에 순응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의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스스로를 변화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이 무엇이 하나님의 의도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선함인지,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온전함인지 판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히스기야의 타락은 풍성함에서 비롯되었다. 풍성함은 히스기야에게 축복이 아니라 독이 되었다. 삶에서 스스로 허리띠를 매지 않을때, 온갖 세상의 것이 흘러들어와 그의 정신을 혼탁하게 한다. 그래서 로마서는 „정신"을 새롭게 하라고 한다. 이성은 우리 삶의 키와도 같다. 언어와 의미가 거하는 곳이 우리 삶의 중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방향타를 바르게 하는 자는 생각과 혀를 통제하는 자이다. 지금의 세대는 건전한 이성보다는, 풍성한 감..
프랑스어가 중급 정도 되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제랄드 메이가 사람들이 사랑을 피하고 효율성을 택하는 이유를 사랑이 수반하는 vulnerability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본다. 내가 벌거벗겨지고, 연약함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랑. 사랑은 우리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해 십자가 위에서 뜨겁게 수치스러워지셨다. 한 교인이 일전에 나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초라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한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이 맥락이 아버지를 빗대어 말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말을 아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니오, 저는 초라하게 살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초라한..
십자가는 선택하는 것이다. 넓은 길 가운데서 좁은 길목으로 들어서는 기점을 선택하는 것. 그것은 성별된 고통이다. 그러나 사실 십자가의 길은 초대에 가깝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 탁자에 놓여있는 부담의 초대장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편안한 삶을 뒤로 하고 불편한 순례를 따르는 것이다. 십자가는 따르는 것이다. 불편한 제자의 길을 따르는 것. 그러나 온전히 항복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 가능한가? 그것이 십자가라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도, 이미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예수는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이 십자가는 우리의 길에 있어 제약이 될 것이고 약함이 될 것이다. 약함과 장애, 고통을 거부하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것. '이 땅에서' ..
나무가 잎새들을 찢는다 단풍이 핏방울처럼 맺히고날개 찢긴 나비마냥 은행잎들이 불시착한다 겨울 오는 길목 이렇게 고통의 모자이크로 수북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벌거벗을 수록 나무의 형신이 십자가를 닮고 이상도 하지 찢어발길 수록 팡파레처럼 흩날리는 저 잎새들이 이 고통으로 어떤 형상을 꼴라쥬해 가는 것일까
내가 죽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죽으셨다. 내가 죽으려 할 때, 그것은 대속의 십자가를 제껴두고, 내 십자가를 세우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해서는 자아가 절대 죽지 않는다.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의 약하심이고 하나님의 어리석음이다. 내 죄를 위한 하나님의 적응accommodation이다. 이 적응은, 나를 위해 어리석어 지셨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약해지셨다는 것이다. 나의 죄를 보지 않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사랑은, 죄를 넘어 그 사람을 본다. 약해지지 않으면 저편으로 넘어갈 수 없다. 어리석어 지지 않으면 저편으로 갈 수 없다. 사랑은 나의 고귀한 신분을 버리고 겸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를 비우고 너를 채우는 것이며, 나를 죽이고 너를 살리는 것이다. 도덕적인 노력과 의지 이전에, 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