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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프랑스어가 중급 정도 되니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제랄드 메이가 사람들이 사랑을 피하고 효율성을 택하는 이유를 사랑이 수반하는 vulnerability 때문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본다. 내가 벌거벗겨지고, 연약함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랑. 사랑은 우리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향해 십자가 위에서 뜨겁게 수치스러워지셨다. 한 교인이 일전에 나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초라하게 살지 말라"고 충고한 일이 있다. 당시의 나는 이 맥락이 아버지를 빗대어 말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말을 아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아니오, 저는 초라하게 살 것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초라한..
우리는 언제나 개방성에 대한 요청과 도전을 받는다. 단지 외부와 내부의 이분법적 도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육체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할때도 이제는 단순히 육체를 논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육체는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라는 말은 순진한 이분법이다. 영혼 또한 악할 수 있다. 마음의 육체성이라는 표현을 기억해볼 때, 우리는 육체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육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낡아져가는 어떤 것, 유한한 피조물성, 자기반복을 추구하는 내적 폐쇄성이 육체성이라고 정의내려보자. (이것도 불충분하겠지만) 오히려 육체성과 반대되는 것이 육체의 내부에서 생겨난다. 단순히 외부로부터, 위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이면서도 내부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편두통이 왔다. 이런저런 일들을 욕심을 내면서 했는데, 그게 탐욕이었던 것을 모르고 (아니 스스로를 속였을거다) 무리하게 행했던 것 같다. 기세가 등등한 사울처럼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이것을 또 저것을, 온 도시와 곳곳을 다니면서 강행하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프고 나니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내 힘이 아니다. 내 능이 아니다. 란 것을 다시 깨닫는다. 건강관리. 그 능력의 범주 안에서 살아야겠다. 아픈 이는 의존적이게 된다. 오는 길에 국진이 차를 타고 병원에 왔다. 의사의 하는 처방에 철저히 의존적이다.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은 후 바로 집에 왔다. 책을 읽을 때마다 편두통이 온다. 책을 덮고 잠이 들었다. 빛이시고, 음성이신 예수를 만난 이후로 사울은 눈이 먼다. 그 이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