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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교토에 갔던 일이 생각이 난다. 조용함과 한적함을 찌는 듯한 여름 중에 찾아 저가항공을 잡아타고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다. 교토에서는 지인이 마중을 나오기로 했었지만, 일정보다 먼저 교토 역에 도착해버렸다. 무더운 한여름의 교토 중앙역 광장은 부산했으며 나는 이전에 가졌던 인상의 여정을 찾아 헐떡였으나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일행을 만나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도 나는 그 인상의 루트를 차창 밖으로 기를 쓰고 찾고 있었고 어디서도 추억은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라멘 집에 앉아 있다. 이 집이 맘에 드는 것은 블랙과 레드 컬러의 강렬한 일본적 대비와 더불어 쿨 재즈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고, 물 컵이 플라스틱이 아닌 유려한 글라스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강렬한 정갈함, 그것이 내가 교토에서 ..
나는 조용하고 작은 우주 속에 있다. 그리스인들은 행성들이 돌면서 아름다운 심포니 소리를 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는데, 내 방은 아무 소리도 없다.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다. 교토의 철학의 길 변두리에 놓여진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8인 도미토리에 혼자 놓여진 일이 있다. 밝지만 작은 방은 어두운 교토의 작은 마을 안에, 작은 지구본 안에 매달려 있었다. (우주는 정말 어두운 걸까? 사실은 빛으로 가득 찬 어떤 곳 안에서 손톱만큼 작은 어둠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주는 깨진 형광등의 수은처럼 반짝이는 빛 말고는 없다. 충일한 빛은, 다른 어딘가에 있다.) 작은 지구본에 매달려 있음을 자각한 나는, 울고 싶었다. 아내를 놔두고 내가 왜 혼자 교토에 온거지? 나는 왜 한학기 힘들게 근로로 고생해서 ..
나는 대학이란 숲을 반드시 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따금씩 책을 한권 들고 나무의 겨드랑이로 숨어들 때가 있다. 벤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나의 학교 뒷편에는 사색하며 배회할 만한 산책로가 있다.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다가 문득 창 너머로 이 산책로를 바라보는 때가 많다. 그때마다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의 길을 품고 있었던 산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철학의 길"은 교토와 하이델베르크 두 군데에 있다. 교토의 철학의 길은 평지인 반면에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의 길은 거의 능선에 가깝다.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까지의 언덕길이 원래의 철학의 길이고, 일본의 것은 나중에 독일의 것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나는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의 길을 등산하듯 올랐던 기억이 있다. 돌아..
일어나보니 5시 반이었다. 이상도 하지. 알람도 없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버스를 탔을 때가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종점에서 종점. 긴린 샤코 마에 (차고 앞)에서 아라시야마까지의 거리가 마치 월계동에서 역삼역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아라시야마 마에 (아라시야마 전)에서 내린 나는 조금 더 걸어야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먼저 도게츠 교를 찾아 갔다. 도게츠 교는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멀찌감치 다리가 보이니 안심이 됐다. 아침 일찍이라 상점들은 전부 닫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홍콩에 스탑오버를 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유럽에서 날아와 이른 아침 도착한 아내와 나는 가장 홍콩의 중심가라고 불리우는 셩원에 갔지만 과일 야채 가게를 제외하고 모두 닫혀 있는 건물을 보고 적잖..
사실 숙소의 도미토리의 문을 열기 전만 해도, 이번 여행이 고독과 살결을 맞대고 하는 여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서른 살이 되도록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고독을 대면할 줄 알았는가 생각해본다. 방학이 나에게 혼자가 되는 시간을 줄 때마다 나는 그 고독의 생경함에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친구에게 급히 연락을 해서 혼자가 되는 길에서 벗어나는 것 뿐이었다. 나는 특히 한국 사람이, 혼자가 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때, 어떻게든 모임을 만들든지 그 안에 편입되든지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외국에서 들은 일이 있었다.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선용하지 못하고 바로 공동체가 주는 안정감과 그것을 교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론, 주일 사역이 끝나고 나서 ..
8년 전의 일이었다. 작은 방의 문을 잠가놓고 친구와 둘이서 The Bends를 한껏 목놓아 부르던 시절이었다. 2012년에는 드디어 라디오헤드가 인천공항에 발을 딛었지만 2004년의 우리들로서는 글라스톤베리 실황을 풀타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Fake plastic trees를 들으며 눈물을 짜던 룸펜 두 명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라디오헤드 일본 투어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친구는 깡패같은 사장이 경영하는 노래방에서 심야시간에 혹사를 당했고 나는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사카의 인텍스 홀. 스탠딩의 맨 앞자리에 있었다. 언제나 There there가 셋 리스트의 선봉에 서는 것이 암묵적 관례였으므로 우리는 세 명의 북소리를 기대했다. 편의점에서도, 심야의 노래방에서도, 우리는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