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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꼴라쥬
1. (2016.12.2) 느리다는 것은 멈춤에 가까운 시간이다.빠름은 시간성의 매력이며조급함은 시간의 지배를 의미하나느림은 헐거워지는 시간과도 같다. 느림은 시간의 자유이다.키에르케고르는 순간이라고 하는 정지를 통해서 영원을 유추하지만우리는 움직임과 동떨어진 정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정지함이 없는 움직임을 생각할 수 없다.사람은 영원을 시간으로부터 밀쳐낼 필요가 없다.누군가 추억을 떠올린다고 해보자.그는 어떤 장면을 떠올리지 핏기없는 정지된 순간을 떠올리지 않는다.추억의 장면은 느리고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이는 멈춤인 동시에 흐름이다.우리는 이 시간이 향유되었음을 느끼며 그 가운데 평화가 있음을 본다.‘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의식은 그러한 시간의 회복을 갈망하고 있다. 2. (2016.12.5..
어제 밤에 돌아오는 길에 중고서점에서 히라이켄의 중고음반을 두장 구매했다. 라는 타이틀의 음반이었는데 리스트의 마지막에 라는 곡이 있었다. 동요 곡이라 귀에 익은 멜로디를 팔세토 창법으로 부르니 사뭇 곡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할아버지만큼이나 오래된 100년 된 시계. 이제는 하늘에 올라간 할아버지. 그리고 이 시계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는 노랫말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서 피안의 세계에 대해 새롭게 눈이 열리게 되는 듯 하다. 단지 이 땅의 일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생명의 탄생, 그리고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직관적으로, 그리고 '원본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질직관은 어느정도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
아버지의 외로운 다음카페에 들어가보았다. 조회수도 몇 없고 댓글도 없는 글들이 가득하다. 던 그 글 앞에서 유난히 눈물이 흘렀다.아버지를 찾아뵐 때 언덕진 근처 공원으로 휠체어를 밀어올려 드리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아파트 단지 앞 트럭에서 과일장수가 팔던 사과 세 덩이 아버지 무릎 위에 놓고 휠체어를 타고 올라가 한덩이씩 비둘기와 같이 먹고, 아버지와 한참을 수다를 떨곤 했다. 아버지의 외로운 카페에 들어가 외로웠을 아버지 생각하니 더더욱 사무친다. 불꺼진 한밤 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 로비의 컴퓨터에서 몇 자 끄적였을 아버지. 어두운 밤 소스라치게 깨어나 하나님 살려달라고 작고 약하게 기도했을 아버지.아버지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마를 만지고 얼굴을 보았다. 의식..
오늘은 출근길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그래서 오늘은 자전거를 집에 매어두고 왔다. 비오는 날 진돌이를 집에 매어두고 나갔다 오면, 누런 털 냄새가 그렇게 진동하곤 했다. (냄새가 진동한다는 표현은 참 문학적이다. 냄새는 특유의 파장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허리가 아팠다. 누워서 책을 읽곤 하는 나쁜 습관 때문인 것 같다. 어제는 누워서 오르한 파묵의 과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의 홈스 롤스턴3세의 '비움과 자연' 부분을 읽었다. 앉아서는 키에르케고르와 레비나스, 성경을 읽었고, 를 마침내 다 읽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무구함이 불안을 만나게 되면서 자유를 체험하게 된다고 말했고, 에서의 홈스 롤스턴은 '자발성'이라는 것, '자유'라는 것이 도덕과 연계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도덕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