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아이슬란딕 3 본문

콜랴 크라소트킨

아이슬란딕 3

jo_nghyuk 2010. 2. 13. 00:53

비행기 바퀴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활주로에 닿는 순간이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인지 유럽 사람들이 섞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비행기 안에서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안전 운행을 축하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 마리는 나에게 헤어지기 전에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마리는 헤드폰을 빼고 비행기 cabin에서 캐리어를 꺼내었다. 나는 인파 속에 부대끼는 것이 싫으므로 사람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나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마리는 이미 길게 늘어선 줄 저 앞에 있었다. 앉은 채로 손을 흔들자 마리는 손짓과 입모양으로 게이트 앞에 서 있겠다고 했다.  사람들과 마리가 나가는 동안 나는 창 밖으로 눈이 내리는 스키폴 공항과, 창에 비친 내 얼굴이 겹친 풍경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지고 나서, 발 밑에서 카메라 가방을 꺼내어 메고 비행기 밖으로 나갔다.

게이트 앞에는 마리가 서 있었다. 우리는 활주로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비엔나 커피와 덴마크 산 연어가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시켰다. 활주로에서는 공항 직원들이 짐을 옮기고, 눈을 치우고 있었다. 이제는 눈이 그쳤는데, 사방에 가득 쌓인 눈이 햇빛에 반사되어 풍광이 눈이 부셨다.

"네가 지금 아이슬란드에 가면, 만년설과 지금 내린 눈을 구분할 수가 없겠구나"

마리는 눈을 찡그리고 창 밖을 응시하다가 말했다.

"사실, 지금 새롭게 내리는 눈이 오래된 만년설 위에 쌓이더라도 그것 역시 만년설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어째서지?” 마리가 초록색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애초에 만년설 위에 쌓이는 새로운 눈을 만년설로부터 구분할 방법도 없기도 하지만 그래서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쌓여있던 만년설 역시 강설량이 녹는 양보다 많아서 매해 새롭게 녹고, 축적하고를 반복하면서 만들어진 거잖아, 그리고 그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면서 얼음이 되고 산의 전층이 그 과정을 반복하다가 보면 빙하가 되는 거고 말야. 만년설 역시 계속해서 진행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라고 해야 맞는게 아닐까?”

호오, 이제 보니 제법 박사인 걸? 그런 건 어떻게 알았대? 아무튼 그렇다면, 내 생각이 맞았다는 거네?”

, 듣고 보니 그러네

나는 뜨거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생각했다.

 

빙하.

굳이 빙하를 보고 싶은 이유는 뭘까.

 

나는 왜 빙하를 보고 싶은 걸까.

만년설 위에 얄팍하게 탑승했지만 그 눈도 결국은 만년설이 되는 것처럼, 빙하가 가진 그 영원성의 트랙 위에 함께 서고 싶은 욕구는 아니었을까.

창 밖에 치워놓은 눈 더미들 아래로 검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검은 비엔나 커피를 홀짝, 삼켜버렸다.

 

 

우리는 다섯 시간 동안을 그 카페에 앉아 줄곧 대화했다. 마리는 전광판에 기다리던 헬싱키 행 비행기가 있는 게이트가 now boarding으로 바뀌자 이메일 주소를 내 수첩에 적어주고 자리를 떠났다. 이런 문구를 남기고서.

 

God bless you!

만년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



--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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