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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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랴 크라소트킨

베이시스트와의 대화

jo_nghyuk 2010. 5. 25. 00:34
베이시스트와의 대화

베이스는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죠. 그리고 그곳의 문을 여는 소리랄까요. 그러한 것들이 들려오기 시작하죠. 대개는, 나무문 비슷한 질감을 지닌 소리들이에요. 밀도가 지극히 차곡한 소리. 저는 그런 소리를 좋아합니다. 그 소리에는 허영같은 건 없어요. 저는 음정이 높아지는 것보다, 깊어지는 것을 선호합니다. 때로 연주하다보면 어느새 우물 속에 베이스와 나 단 둘만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그건 이루 말할 수 없는 안정감을 안겨주죠.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깊이의 바닥에 누워, 스스로의 심장고동 소리를 듣는 기분일까요.
나는 남은 아메리카노를 카운터에 반납하고, (그는 바닥까지 마셔버렸지만) 신시이바시역에서 헤어졌다. 나는 낡은 게스트하우스에 불을 끄고 누워, 어둠 속에서 아직도 옅은 미열을 내는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빌 에반스처럼, 차분하게 사그라지는 건반들. 5월 25일, 오늘도 글을 마무리하지 못한채 26일의 나에게로 키보드를 밀어넣는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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