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구름 많은 날입니다.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구름 많은 날입니다.

jo_nghyuk 2010. 5. 26. 17:04
네덜란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군대개미같은 자전거행렬도, 한 블럭을 지날때마다 조우하게 되는 운하들도 아니었다. 다만, 땅을 삼킬 기세로 다가오는 가슴을 쓸어내릴듯하게 거대한 구름들이었다. 내 시야에는, 360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구름이 점거한 풍경뿐이었다. 땅은 너무 낮았고, 가옥은 3층 이상으로 세운 것이 없고, 운하는 실핏줄처럼 미세했다. 보이는 것은 구름 뿐이었다.
나는 라익스뮤제움에서 19세기 네덜란드 풍광화가들의 구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얀 반 에이크, 베르메르, 야코프 반 루이스달. 그들은 구름을 액자 속에 박제해 넣기로 정평이 난 거장들이라지만, 나는 그들의 박제된 구름이 액자 속에서 지금도 박살이 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온 참이었다. 금이 간 구름이라니, 낮은 땅 위에 장엄하게 임재하고 있는 구름을 보며 나는 느꼈다. 스스로가 조그마한 액자라는 사실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