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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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조리개 값

Arriving @ Tokyo in Summer

jo_nghyuk 2011. 2. 10. 11:49
하네다 공항은 네 번째이고 동경은 두 번째이다. 하네다에 처음 발을 디딘 때는 미국으로 가면서 환승할 때였다. 아마도 나는 환승을 하면서 이곳 비행기가 보이는 게이트 앞에서 소유라멘을 먹었던 것 같다. 편의점 라면같은 면발과 국물에 적잖이 실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홋카이도로 갈 때도 이곳을 경유해 갔었는데 그때는 사역을 위해 갔던 차라 인원과 짐 관리에 여념이 없어서 그다지 추억이 없다. 기억나는 것은 커다란 로비와 큰 광고판들. 화장품과 여자 연예인이었는데 어떤 것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본에는 네 차례 방문했었다. 후쿠오카를 가장 먼저 방문했었고 군 입대 전 친구와 교토에 갔었다. 라디오헤드 공연을 보러 간 여행이었는데, 공연을 보는 당일만 오사카에 있었고 여행은 거의 교토에서 이루어졌었다. 오사카에서 한 것은 공연을 본 것과 비행기를 탄 것, 그리고 잠을 잔 것 뿐이다. 군 제대 후에는 교회에서 일본 찬양선교를 함께 가면서 동경의 이타바시에 갔었고, 그 후에 선교단체에서 홋카이도로 선교여행을 갔었다. 그리고 이번 동경 방문이 다섯 번째 일본 방문이다. 적지는 않은 횟수인 것 같다.
나는 지금 이타바시로 가고 있다. 그리운 풍경을 4년째 품어왔다. 교회 앞을 홀로 산책하면서 거닐었던 작은 거리, 자전거와 화분이 놓여진 가정집들, 맨션들, 공원...
하지만 하네다 공항에서부터 모든 것이 낳설다. 지금까지 동경을 오늘처럼 단독으로 찾아서 방문한 적이 한번도 없던 탓이리라. 이런저런 상념이 많았지만 막상 지하철을 찾아 타는 것도 쉽지 않았고 동행하던 미리와 티격태격하는 시간도 잦았다. 아이폰 어플 오류로 국제 통화비 계산이 원래보다 더 많이 책정되어서 마음이 이래저래 분주하고 산만했다.
어쨌든 우리는 하네다에서 이타바시로 가는 노선을 잘 안내받아 지하철에 승차했다. 나는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맨션과 가로등의 행렬을 응시했다. 반도체처럼 빌딩들이 빼곡한 도시. 그 사이로 혈관같은 길이 펼쳐져 있고 백혈구처럼 창백한 도시인들이 빠르게 흘러다닌다.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로 가던 날 차창 밖으로 보던 풍경과 같은 풍경이고 4년 전과 동일한 풍경이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모든 것이 음침하고 고독하고 섭섭해 보이는 걸까.
달라진 것일까, 내가 보는 눈이 생긴 걸까. 허망한 풍경에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나는 일본의 젊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어느 곳이든 장차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젊은이들 뿐이다.
내 머리 속에는 동경의 조각조각난 장소들이 자리잡고 있다. 파편들은 서로의 손을 잡지 못하고, 우주처럼 망망한 어딘가에서,
이미지로만 떠돌고 있다. 이곳에 다시 오면 서로서로의 이미지들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중간에 유실된 길들을 이어가면서.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유실된 것은 여전히 유실되어 있고 나는 조각조각을 확인할 뿐이었다. 기억에 생생한 것은 생생히 현장에서도 살아있고, 기억에 없는 것은 현장에서도 없었다.

이타바시에 도착한 것은 한밤이었다. 교토에 도착했었을 때도 한밤 중이었다. 삿포로에서도 밤의 기억이 더 많다.
나는 동경의 여름밤을 좋아한다. 따스하면서 선선한 여름밤. 우리는 역에서 나와 길 건너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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