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나의 몫을, 그리고 서로의 몫을.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나의 몫을, 그리고 서로의 몫을.

jo_nghyuk 2012. 5. 17. 18:40

며칠 전에 오랫만에 "슬램덩크"를 보는데, 정대만이 매우 지친 상태에서 계속해서 3점 슛을 날리는 장면이 있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할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정대만이 계속해서 3점슛을 마음놓고 날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실패했을 때 팀원들이 책임져 줄 것을 (리바운드를 포함해서)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놓고 그는 3점 슛을 날릴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팀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아닌가.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백퍼센트를 쏟아부을 수 있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3점 슛을 과감하게 날릴 수 있는 것. 개인이 공동체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동시에 어린아이처럼 전적으로 자유롭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공동체. 채치수는 '나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을 극복해서 '내가 최고의 센터가 아니어도 나의 팀원들이 있다'라는 생각으로 나아갈 때 팀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는 것을 경험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이 우주의 어느 것도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지금 혼란 속에 놓여져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자기 자신만 혼란 속에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혼란을 더 큰 질서가 품고 가고 있다. 

나의 최선을 다하고, 전적으로 어린아이처럼 신뢰함으로 공이 내 손에서 떠나는 것을 보고 싶다. 그 공은 또한 다른 팀원들에 의해서, (그리고 그에 의해서) 반드시 골망을 흔들 것이다.

(또 그래서 각자 자기의 짐을 지라는 말을 바울이 했나 보다. 내가 짐을 대강 질 때 그것은 공동체 전체를 힘들게 한다.
또 반대로 각각 서로의 짐을 지라는 말을 바울이 또 했나 보다. 다른 이가 쓰러질 때 내가 그것을 지어주면 그것은 그 사람을 살리는 일이 되는 것이다. 책임은 나에게, 사랑은 상대방에게. 그 반대로 살지는 말자.)

결론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성실히 살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남들을 좀 봐주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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