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교토 1 본문

지금의 조리개 값

교토 1

jo_nghyuk 2012. 8. 17. 15:57

8년 전의 일이었다. 작은 방의 문을 잠가놓고 친구와 둘이서 The Bends를 한껏 목놓아 부르던 시절이었다. 2012년에는 드디어 라디오헤드가 인천공항에 발을 딛었지만 2004년의 우리들로서는 글라스톤베리 실황을 풀타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Fake plastic trees를 들으며 눈물을 짜던 룸펜 두 명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라디오헤드 일본 투어에 참석하는 일이었다. 친구는 깡패같은 사장이 경영하는 노래방에서 심야시간에 혹사를 당했고 나는 편의점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사카의 인텍스 홀. 스탠딩의 맨 앞자리에 있었다. 언제나 There there가 셋 리스트의 선봉에 서는 것이 암묵적 관례였으므로 우리는 세 명의 북소리를 기대했다. 편의점에서도, 심야의 노래방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만날 때마다 There there의 퍼커션을 연주하는 모션을 취하며 여행에 대한 설레이는 마음을 두드려댔다. 그래서 시작부터 인텍스 홀에 울려퍼진 2+2=5와 Myxomatosis에 공연 중반이 되도록 이 생경함에 대한 가벼운 쇼크 상태에 놓여서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고 해야 맞다.

당시의 우리의 여행 일정은 영화 테이큰에 나오는 리암 니슨의 딸이 U2의 유럽 투어 공연일정을 따라 유럽 여행 계획을 짰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라디오헤드가 정이고, 교토는 부였다. 


그런데 둘 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그 공연의 순간이 아닌, 우리가 거했던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지나가고 없지만, 그 공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더더욱 교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했다.


대학 시절 친구가 처음 이어폰으로 creep을 들려줄 당시, 나는 실연을 당한 상태라서 이 노래를 수도 없이 “i don’t belong here”를 울면서 들었고 마이크만 잡으면 쉬 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으어어어엉을 외쳐대는 iron lung이 되었다. 처음으로 산 앨범은 그러나 사전지식이 없던 탓에 공교롭게도 앨범 커버아트가 가장 깔끔하게 예뻤던 Amnesiac 이었고 (나쁜 스탠리 던우드) 나는 라디오헤드와 작별인사를 할 뻔 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creep처럼 날 위해 울어줄 곡이 초기 앨범에는 있으리란 희망을 갖고 내가 산 두번째 앨범은 The Bends였다. 나와 친구는 The Bends를 가장 사랑했다. 

우리 여행 또한 라디오헤드의 음악으로 가득차 있었다. CDP였는지 카세트였는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가모가와 강변에서 우리는 라디오헤드를 들었고, 철학자의 길에서도, 기요미즈데라의 한 벤치에서도, 교토의 버스 안에서도 계속해서 라디오헤드를 들었다.


교토를 반드시 다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장소에는 라디오헤드의 잔향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점차 교토라는 곳이 음악을 귀에 꽂고 다닐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의 여행은 너무 단순했다. 걷고,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면 끝이었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라는 사람이 참으로 많이 변했구나,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온천여행으로 다녀온 후쿠오카 말고는 외국에 가본 일이 없었다. 교토를 다녀오고 정확히 한 달 뒤에 군 입대를 했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단연 교토였다. 2004년 다녀온 교토, 그리고 2년의 군 생활, 그리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내가 가본 도시는 이제 뉴욕, 뉴저지, 라스베가스, 로스앤젤레스, 토론토, 퀘벡, 도쿄, 나가노, 삿포로, 하코다테,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위트헤르트, 잔세스칸스, 할렘, 델프트, 헤이그, 키예프, 떼르노필, 마닐라, 다시 도쿄, 가루이자와, 다시 암스테르담, 하이델베르크, 본, 쾰른이 되어 있었다. 다시 교토.가 되기까지 참으로 놀라운 여정이었다. 8년은 정말 긴 세월이었다. 지금의 내가 보는 교토라는 도시는 8년 전에 보던 그 도시와 다르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중앙역도, 교토 타워도, 버스도, 다 그 자리에 있었고, 기온 중심가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는 라디오헤드를 사랑하던 그 우울한 청년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던 것들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17번 버스를 타고 바깥 풍경을 보며 숙소로 가는 20여분 동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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