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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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조리개 값

낙선재에서

jo_nghyuk 2012. 8. 21. 22:18





오랫만이었다. 최근에 궁에 언제 갔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남산 한옥마을에 요스트와 같이 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처마 밑에 앉아서 말없이 회색 풍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요스트에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의 색은 어쩌면 이런 날씨에 더 깊이가 있어, 채도는 떨어지지만 깊이는 더 해. 나는 그게 한국의 색이라고 생각해'

요스트는 어느 정도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 전 우리는 암스테르담 시립 도서관으로부터 강 너머의 풍광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2년을 두고 우리는 다시 풍광에 대한 서로의 시선을 주고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고향을 보는 나, 타국을 보는 친구.

여행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오면 스스로의 각막이 낯설어져 있음을 느낀다. 교토에 다녀온 후 서울의 각 풍광들을 볼 때, 나는 이방인의 시선을 시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럴 때는, 익숙했던 곳을 낯설게 산책하는 것이 좋다.

찬이와 함께 나는 낙선재의 처마 밑에 앉아 있었다. 오늘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낙선재의 무색 풍광에 대해서는 안타깝다. 집에 와서는 잠언 31장 10절의 <에셰트 하일>의 '현숙한 여인'이란 개역개정의 표현은 전통적인 여성에 대한 시선이라는 논문을 읽게 되었다. 현숙한 여인보다는 맥락적으로 볼때 '유능한 여인', 즉 기존의 남성적인 이미지로 여겨졌던 강함을 대입해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설이었다. 유능한 여인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낙선재처럼 색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숙한 여인은 다분히 남성중심적인 해석이고, 잠언의 맥락적으로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아무튼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무색의 낙선재에 앉아서 비오는 풍광을 보고 있었다. 대개 궁에 오는 것은 이런 정주를 위해서이다. 산책의 순간보다 나는 처마 밑 마루에 앉아 있는 이 순간을 더욱 사랑한다. 특히 오늘처럼 부슬비가 내리는 날이라면 더더욱 좋다. 

후원 관람이 끝날 즈음 해가 구름에서 나오고 있었다. 찬이와 나는 리투아니아의 소녀들과 칼라풀한 사진을 찍고 악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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