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교토 3 본문

지금의 조리개 값

교토 3

jo_nghyuk 2012. 9. 2. 15:58
일어나보니 5시 반이었다. 이상도 하지. 알람도 없이 일어나 샤워를 하고 버스를 탔을 때가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종점에서 종점. 긴린 샤코 마에 (차고 앞)에서 아라시야마까지의 거리가 마치 월계동에서 역삼역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아라시야마 마에 (아라시야마 전)에서 내린 나는 조금 더 걸어야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먼저 도게츠 교를 찾아 갔다. 도게츠 교는 달이 건너는 다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멀찌감치 다리가 보이니 안심이 됐다. 아침 일찍이라 상점들은 전부 닫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홍콩에 스탑오버를 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유럽에서 날아와 이른 아침 도착한 아내와 나는 가장 홍콩의 중심가라고 불리우는 셩원에 갔지만 과일 야채 가게를 제외하고 모두 닫혀 있는 건물을 보고 적잖은 실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제 저녁엔 교토의 이른 바 부촌이라 불리우는 곳을 지났었는데 오래되고 낡은 맨션 가득한 거리가 나에겐 셩원과 비슷하게 비쳐졌다.
나는 이 교토라는 도시가 정말로 낡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적에는 왜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인간의 사상이 달라지면 시선도 달라진다. 시력은 더 나빠졌고, 시야는 더 넓어졌다. 이들은 우리처럼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땅의 지질층을 보면 역사의 전환점마다 겹겹이 지층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지층은 변할지언정 건물들은 그대로인 것 같다. 이들은 천년 전의 그 건물을 계속 보수해나갈 뿐이다. 지층보다 오래된 건물이 있다고 내가 말한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지층과 함께 이 건물들의 겨드랑이는 깊숙해져 간다. 정지용의 시대와 지금 나의 시대에 다른 건물이라고 하면 어쩌면 맥도날드와 호텔들, 맨션들, 스타벅스와 애플 스토어를 비롯한 몇몇 건물들 뿐일 것이다. 지층을 더 이상 파지 않고, 유적들을 땅 아래 쉬게 한 채 있는 건물들을 보수하면서 계속 사는 것은 허름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도시는 허름하고 낡은 곳일 수록 그 가치와 자부심이 대단한 곳이다. 우리는 이 시 전체에서 허름함을 느끼며 여행하게 된다. 자전거가 많이 달리는 가모가와의 강변길은 여전히 누런 흙길이다. 나의 서울 집 앞에는 한강까지 이어지는 강변 자전거 길이 있다. 두시간 여의 거리가 붉은 자전거 도로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월계동에서 광나루에 이르는 이 길을 계속해서 달린 적이 있다. 풍경과 환경은 어쩌면 가모가와보다 서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이 길은 구리까지도 끊기지 않고, 춘천까지 자전거 여행자를 인도하기도 하고, 서해까지도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하니 최근에 이는 MTB라든지 로드 자전거의 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자전거는 별로 좋은 자전거가 아니다. 굉장히 촌스러운 불꽃 무늬의 회사 마크가 붙어 있는 빨간 색의 자전거인데 아버지의 것을 받아 쓰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로 도시들을 여행할 때도 나는 아주 오래되고 낡은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었다. 5시간,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동거리를 지나며 길을 물어볼 때 사람들은 “그 자전거로? 불가능해” 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도시와 도시 사이를 느리지만 꾸준히 이동했다.
서울은 참으로 미래적인 도시이다. 많지는 않으나 내가 가본 전세계의 주요한 수도들 중 서울이 가장 미래적인 감각들을 향유하는 도시라는 것을 8년의 여정동안 깨닫게 되었다. 서울은 어쩌면 가장 빠르고 편하고 쾌적한 도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울의 지층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교토 박물관에서 보았던 그들의 연대별 퇴적층이 부럽다. 그리고 때론 지층보다 무거움을 가진 그들의 건물들도 샘이 난다.
세운상가 옆을 지날 때가 그렇고, 경복궁과 창덕궁 안의 세련되고 현대적인 건물의 카페와 기념품 샵을 볼 때 그렇고, 점점 구역이 좁아지는 나의 동네의 한옥촌을 지날 때 나는 샘이 나게 그들의 교토가 부럽다. 그들의 전통에 대한 이해와 약을 정도로 뛰어난 상술이 맞물려 만든 전통건물들과 찻집들, 기념품 샵, 음식점들을 볼 때 지금의 나는 샘부터 난다. 왜 우리는 경복궁 안에 현대적인 양식의 기념품 샵을 짓는가? 왜 우리는 창덕궁 안에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를 짓는가? 왜 우리는 낙선재를, 인정전을, 근정전을 바라보며 차를 음미할 전통 양식의 찻집을 지을 줄은 모르는가? 왜 우리는 세운상가와 같은 괴물을 만들고, 헐고를 반복하는가? 인사동의 전통 찻집들은 왜 구수하지만 세련되지는 못하는가? 나는 구수함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상술에 서툰 순진한 접근조차 사랑한다. 그러나 아쉽고, 이웃나라의 노련함에 샘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모가와 강변에는 예쁜 찻집이 있지만, 한강에는, 중랑천에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예쁜 찻집은 가로수 길에 가서 찾아야 하는 것이고, 한강에서는 치킨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아, 한강과 치킨. 너무 빠르다. 경복궁 안의 아메리카노. 너무 모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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