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소금장수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소금장수

jo_nghyuk 2012. 11. 8. 16:09
맑은 소금이 될수록, 그 결정이 순수해지고 순결해질수록, 상한 것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따금씩 한적한 곳으로 가시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던 순간의 그의 감정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는 지쳐 있는 것이다. 모든 상해가는 것들이,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그에게로 다가와서 그로부터 소금을 얻어가듯이, 그는 상하지 않는 것을 타자에게 주고 자기는 상해간다. 그는 멸하지 않는 빛을 타자에게 주고 자기는 침침해간다. "오직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참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빛을 나누어주셨다. 사람들은 기쁨과 활력을 얻어서 돌아간다.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돌아간다. 그들은 자기의 필요를 채우고 돌아간다. 등을 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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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그것은 지침과 외로움의 대화의 요청이다. 
"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내가 결국은 독백monologue를 하는 존재가 되도록 떠나려느냐. 내가 한 말은 너희를 살렸다. 너희는 말씀이 아니라 생에 대한 기쁨을 얻고 돌아가려느냐.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은 배부른 까닭이요 믿기 때문이 아니다"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함이다. 나는 영원한 교제를 원한다. 이기성과 이타성이 혼재된 욕구를 들고 너는 내게로 오는 것이다. 나는 이를 나쁘게 여기지 않고 딱하게 여긴다. 그리고 너에게 아가페의 영원한 대화를 요청한다. 이 대화는 순결하고,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만을 따르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질문한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너는 나에 대해 아가페의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나와 교제하길 원하느냐?
"베드로야, 내가 나를 이들 (이 물고기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너는 내가 너에게 베풀어준 복을 넘어서 나에게 나아오길 원하느냐? 
너는 나를 찾지 못하자, 물고기를 찾기 시작했다. 무언가 채울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너의 배를 채울 것이다. 그러나 너는 네 배를 만족시킬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찾을 수록, 찾을 수 없었다. 바다 속에는 물고기가 가득함에도, 너에게는 한마리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물고기는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하늘로부터) 얻은 물고기를, 수천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나누어주었다. 

예수는 먼저 그 물고기를 베드로에게 먹이시고, 그 많은 물고기들을 옆에 두고 말씀을 이어갔다. 
"내 양을 먹이라" 네가 너를 위해 물고기들을 구할 때, 나는 바다에게 명해 너의 그물에 물고기가 걸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너는 나를 물고기보다 더 사랑한다. 너는 하늘에 있는 것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나 그것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오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한 분을 섬겨야 한다. 섬긴다는 것은 추구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추구는 종교이고, 예배이고, 제사이다. 그러나 나는 너를 탓하지 않는다. 배고파서 나를 찾은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내가 주었던 것처럼, 너의 배고픔에도 나는 물고기를 주고 너를 먹인다. 
"그런데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나도 알고 있다. 네가 나를 이들보다 (비교의 경주로서의 사람들, 추구하는 대상으로서의 물고기들) 더, 가장 사랑하는 궁극적 추구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사랑은 타인과의 비교급이 될 수 없는 동시에 될 수 있다. 너는 나를 추구하는 경주 중에 있는 것이다. 이기기를 힘쓰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함으로 면류관을 얻으려 힘쓴다. 그 궁극적 목표는 너와 나의 영원한 교제이다. 나는 그 교제를 형이상학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숯불을 놓고, 고기를 놓고, 함께 식사하며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서로를 향한 아가페이다. 나도 알고 있다. 네가 나를 추구하는 아가페의 열망을. 그리고 네가 계속해서 고꾸라지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울고불고 있음을. 울면서 나와 함께 "하늘로부터" 물고기와 떡을 아버지로부터 받아 나눈 높은 산으로 간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물고기를 네가 "잡으러" 가고 있음을.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이지, 네가 "잡는" 것이 아니다. 열매는 하나님으로부터 나를 통해 너에게서 맺힐 것이다. 너는 나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너는 잡을 수 없으며, 잡아야 한다면 나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받으라. 받아서 사람들을 먹이라. 먹이고, 돌보아라.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라. 그러고, 또 먹이라. 이것이 목회이다. 베드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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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지쳐 있다. 솔직히 말하면 인간 군상에 대해 번아웃에 가까운 안타까움과 불쌍히 여김, 그리고 (이것은 주님이 주시지 않은, 나의 연약한 죄성의 마음인데) 넌덜머리가 나고 있다. 소금이 될수록, 다가오는 군상은 소금을 보고 온다. 소금을 얻기 위해서. 죄성은, 교만은, 그들을 힐난하고 조소하게 하며 깔보게 하나, "나 역시 물고기를 얻으려 바다로 갔다가 예수님께 물고기를 얻었음"을 깨닫는다면, 나 역시 상하지 않으려고 소금 결정인 예수를 붙잡은 것을, 살기 위해서 그분을 붙잡을 수 밖에 없었음을 깨닫는다면, 너는 너의 생명을, 너의 빛을, 소금을 네 것으로 여기는 지독한 교만의 가증한 존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너의 너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네가 열심을 낼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한 것이다. 너의 소금은 전부 그분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자, 이제 아낌없이 주어라. 아낌없이 주다가 다시 아이의 도시락처럼 가진 것이 없어질때, 다시 아이처럼 한적한 곳으로 아빠에게 나아오너라. "오직 감사로" 그 주어진 도시락에 축사할 때, 내가 오천을 먹이고, 사천을 먹인 것처럼 너는 다시 삼천명을, 오천명을 먹일 것이다. 물고기를 먹이라, 그들을 인도하라, 말씀의 떡을 먹이라. 네가 아이처럼 약해지고, 줄 것이 거의 없을 것처럼 느껴지고, 지치고, 약하고, 환경이 여의치 못하다 느껴지는 때일수록, 나는 너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을 먹이는 능력을 보일 것이다. 

너는 너의 것이 아니다. 
너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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