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빛과 모네, 어스름과 드가, 프랑스 교수의 입술 본문

연필의 간

빛과 모네, 어스름과 드가, 프랑스 교수의 입술

jo_nghyuk 2012. 11. 9. 00:58



모네에게는 온화함을 잃지 않는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체를 향한 균형감을 유지하지요. 파우스트처럼 균형감을 일부러 잃어버리는 화가도 있습니다. 재구성을 위한 모험을 하는 것일텐데 여력이 안될때 바닥에 나뒹구는 빛의 파편만 남게 됨을 보는 것처럼 무안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모네는 참 온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온화한 균형에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보이지요. 그의 그림에서 탐욕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만 거기서 우리는 빛의 움직임 중에 있는 일렁이는 색조를 경험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그는 철저히 빛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화가였으며, 그래서 전체 구성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빛을 따라가다 보니, 그의 색조는 어느덧 희미한 파스텔 톤이 되었지요. 그의 그림은 무엇 하나 뚜렷하게 스스로를 주장하는 색이나 윤곽을 지니지 않습니다. 르누와르보다는 연한 색조를 쓰고 윤곽에 있어서는 좀 더 분별 있는 느낌입니다. 
저는 모네를 참 좋아합니다. 모네는 빛의 화가이며, 정원을 그리길 기뻐했으며, 그림 속의 까미유는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해바라기만큼은 모네의 해바라기를 가장 사랑합니다. 아이리스는 강직한 고흐의 것을, 여성들은 섬세한 드가의 것을, 구름은 선명한 베르메르의 것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시기하기까지 사모하는 재능은 모네의 것입니다. 그는 빛을 잡아다가 캔버스 안에 풀어놓습니다. 그 빛은 지금까지 살아 출렁이고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빛이 고형에 가까운 선명함이라면, 모네의 빛은 물에 가까우며, 색조를 흡수하여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모네가 소유한 그 빛을 사모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절대로 놓치지 않았던 하나, 그의 온화한 균형의식을 존경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반면 드가에게서는, 섬세하지만 깨지기 쉬운 연약이 느껴집니다. 그 깨진 부분들에서는 그의 투박이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나는 여기서 눈물을 흘립니다. 저는 인간으로서는 드가의 연약에 공감하고, 마음가짐으로서는 모네의 단호한 온화함을 존경합니다. 드가는 참 어수룩하고 바보같습니다. 그는 발레리나들을 훔쳐보고는 쑥스러움에 그 앞에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쩜 그런 리듬감을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요? 드가는 모네와 다르게, 그의 안에 음악적 리듬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그는 살짝 박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타이밍을 놓치고, 허둥대고, 버둥대고 얼굴이 벌게져 쩔쩔매는 그의 리듬을 상상하노라면, 푸훗, 경쾌한 웃음을 짓게 됩니다. 그럼에도, 드가의 여성적 리듬감은 탁월합니다. 드가에게는 모네와 달리, 그림에 어스름이 져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그늘감에 사람들은 위안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능숙함보다는 어수룩함이 우리에게 정감과 위안을 주고, 강함보다는 약함이 내 옆에 있다는 편안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 온 제 영어 선생이었던 드보라는 교수는 제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jo, nghyuk"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그분의 입술에도 어스름이 껴 있었고, 제 귀에도 어스름이 내려앉게 되어 제 이름은 저녁처럼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가 않더군요. 제 이름의 원래 의미는 "빛나는 종"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 온 입술에 의해 제 이름에 어스름이 끼게 된 것이죠. 저녁이라니,
그런데 별 것 아닌 이야기지만 모네도 드가도 프랑스 사람이었군요. 제 이름의 빛과 모네와 프랑스 교수의 입술과 어스름과 드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모네는 죽은 까미유의 얼굴에서도 빛의 움직임을 찾으려 하는 자신을 인식한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찾은 것은 어스름의 움직임 뿐이었겠지요. 결국 그는 빛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빛을 담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도 어스름을 본다면, 어스름을 담게 되겠지요. 드가는 어땠을까요? 그는 빛을 본 후에, 집에 가서 어스름 속에서 빛의 리듬을 머리 속에서 계속 반복하며 무언가 새로운 리듬을 위해 투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에서 드가는 어스름 속에 작열하는 불꽃glow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드가는 모네보다 더 뜨거웠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모네의 그림을 보니, 미지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스름을 알고 있는 드가는, 빛을 옮겨담는 모네보다 뜨겁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을 뚫고 나온 렘브란트의 빛은 그래서 이 세상 어느 화가보다 안심을 주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저녁이지만, 아침이 분명히 오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평안케 하고, 자유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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