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성령에 매이는 것이 곧 완전한 자유.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성령에 매이는 것이 곧 완전한 자유.

jo_nghyuk 2012. 11. 21. 00:08
성령에 매인 사람이 오히려 가장 자유롭다. 
그리고 그는 자의적으로 어떤 것을 행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와의 교제 속에서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여 그대로 행한다.
성령에 매여 광야로 간 예수는 자신의 필요를 보지 않았다. 떡도, 권세도, 안전도. 
예수는 오직 성령에 매여 순종했고, 자신의 유익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시는 대로만 행했다. 가라 할 때 가고 멈추라 할 때 멈추었다. 바울도 그러했다. 계속되는 고난에 모든 이들은 그를 만류하였으나 그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갔다. 고난이 있을 것을 알고도 갔다. 성령에 매인 사람은 바람과 같다. 자신의 뜻대로 머물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야말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충성된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이 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는 우리를 쉴만한 물가와 골짜기로 인도하시는 영이시다. 가장 좋은 것을 아버지는 알고 계신다. 
각 사람이 어디에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할 것이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그 단계대로 두려움 없이 성숙하게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할 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더 자유해짐을 느끼며, 기도하지 않을수록, 더 매여 종노릇하는 것을 느낀다. 절제는 자유가 주어질 때에만 생겨날 수 있는 개념이다. 자유하지 않은 자녀에게는 절제도 없다. (절제가 없으면 자유도 없는 것처럼) 결국 우리는 생기의 향내가 가득한 성령의 방향으로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참된 자유와 생명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나는 성령에 매여 있고, 동시에 성령도 나에게 매여 계시다.


아라시야마 치쿠린에서, 교토, 2012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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