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정직한 길로 다니는 지혜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정직한 길로 다니는 지혜

jo_nghyuk 2012. 12. 28. 12:20
그래서 언제나 "사람으로부터의" 분별은 완벽한 것을 지향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건강한 것을 지향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잠언은 "지혜는 정직한 길로 다닌다"고 말한다. 정직함이 없는 분별은 "속이는 저울추"처럼 지혜는 있으나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어 미혹의 병기로 악용되어질 것이다. 
물론 정직함 또한 지혜가 없다면 "죽이는 순수"가 되어지겠지만. 
그러나 나는 정직을 여전히 우선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과 성숙을 인간은 부단히 꾀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도상 위에 있는 미완의 존재로서 인간은 분별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질 수 없다. 차라리 한 발을 뒤로 빼고 정직에서의 건강함을 지향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럼에도, 이 시대는 갖은 모호함과 흐릿함으로 더 깊은 분별을 요하고 있으며, 항상 후진만을 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창일하게 넘치고 있는 상황이다. 
분별이란 무엇일까. 때로는 고전을 비롯한 책 속의 현인들이 우리가 시행착오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예방해준다. 
우리는 어디까지 고전의 지혜에 힘입어야 하고, 어디서부터 달려가야 하는 것일까. 몸을 내던져서 몸으로 해석해내어야 하는 것이 동시대의 신학자들의 과업일 터인데 우리는 여전히 담력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자신만만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용기의 문제라 말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담력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말이다. 이것은 순종의 문제이다. 달려가는 것도 순종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것도 순종으로 우리는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에 힘쓰는 것을 여전히 놓지 말자. 모두가 힘들어할 때 더욱 눈을 부릅뜨고 기도하자.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생동하도록 신실하게 묵상하자.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더욱 희망의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자. 거룩, 신실, 구원, 치료, 위로,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더욱 성령의 방향에 스스로를 튜닝하는 데에 힘써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그림 사역, 200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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