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미니멀리즘 - 19.03.2017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미니멀리즘 - 19.03.2017

jo_nghyuk 2018. 4. 17. 02:48


독일에 오기 전에 5년이 넘게 살았던 아파트 집의 짐정리를 아내와 함께 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틀만에 그 작업을 완료했는데, 우리가 했던 주된 일은 물건을 버리는 일이었다.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이 말하듯이, 짐을 버리고 나니 참으로 홀가분하고 정돈된 마음이 되었다는 것과, 그렇게나 많은 물건들을 5년동안 쓰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도 깨닫게 되었다. 독일에 가져올 수 있는 짐이 너무도 한정적이라, 우리는 각각의 캐리어 하나와 이민가방 하나씩의 분량만큼만 짐을 챙겨갈 수 있었다. 덕분에 몇 주에 걸쳐서, 그리고 이틀동안 집중적으로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물건들을 버리거나, 남에게 주어야 했다. 더욱 아이러니했던 것은, 그렇게 짐을 줄였는데도 그 짐을 가지고 베를린 공항을 나서면서부터, 짐이 많다는 것이 참으로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호텔에 가기까지 경험해야 했다는 것이다. 유학길에 오른 우리였음에도, 이민가방에는 책이 몇 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줄인’ 짐조차 길 위에서는 부담스러운 짐짝일 뿐이었고, 공사 중이라 엘리베이터가 폐쇄된 기차역을 만날 때면 나는 육교만치 높은 계단을 이민가방과 캐리어를 들고 오르내려야 했던 것이다. 

가방도 두 개, 외투도 두 벌, 신발도 두 켤레, 거기에 핸드드립을 해먹겠다고 핸드밀과 서버까지 가져왔지만, 와서 살아보니 가방도 하나, 외투도 매일 하나, 신발도 대체로 한 켤레, 핸드드립은 하지도 않고 그냥 숙소에 있는 집주인의 머신으로 내려먹다가 그마저도 죄송스러워서 하나 구입해서 쓰는 바람에 몇몇 용품들은 그야말로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서랍장에 고이 모셔져 있는 중이다. 최소한 줄였다고 해도 여전히 살아 보겠다고, 아니 ‘향유’해보겠다고 붙들고 온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현인들의 공통된 잠언이 말하듯, 더 많은 소유가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욕심이 그를 행복으로 이끄는 법이다. 그걸 절감하면서도 또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가련한 이 사람을 보라. 사실 모든 것은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지만, 중간중간 더 많은, 새로운 어떤 것을 기웃거리려 하는 욕망이 고개를 쳐들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미니멀리즘의 목표는 ‘줄이는’ 것도 아니요, ‘무소유’의 깔끔함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현재를, 생동하는 현재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누리는 것이다. 많은 미니멀리스트들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물건은 줄이지 않는다. 다만 불필요하거나 애매한 물건은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다. 논문연구를 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명확한 자세가 요구되어진다고 생각한다. 불필요한 것은 과감히 잘라내고, 필요한 부분들에 집중하는 것. 어짜피 지금 머무는 이 집에는 책장도 없을 뿐더러, 책장을 들일 공간도, 마음도 없다. 집주인 아저씨가 공간활용을 해서 만들어준 널판 몇 개가 전부이다. 분명히 입장정리를 하는 것도 ‘의지’의 문제이리라. 질질 끌려가는 삶도 책임적 행동의 문제이며, 현재를 참으로 누리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삶도 결정의 문제이리라. 마치 독일 시골 마을에 와서 좋은 공기와 아름다운 경관에 만족하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장을 보기 위해 시내까지 걸어나가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어서 자동차를 구입해야 하는 마음이 드는 것과 같은 형세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어중간한 마음은 바보스럽고 어수룩하기 그지없다. 미니멀리스트의 정의는 어쩌면 ‘입장정리를 확실히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필요한 것, 정말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취하고, 애매하고 어중간한 것은 다 잘라내는 것. 그 단순함과 여백에 인간다운 삶이 여유롭게, 차분히 자리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다시 미니멀리즘을 정의하자면,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생활세계를 범주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자신이 좋아해서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고 향유하며,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게 실수로 장차 발견되더라도)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그래서 자기 자신만의 한계성 안에, 자기 자신의 고유한 범위 안에 ‘자족’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이며 정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렇게 되면, 물건이 많고 적음이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정돈’된 생활세계의 적소성이 미니멀리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질서있게 하라’ 아무도 너의 자유의 제한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능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므로, 스스로 현명하게 행동하라. 독일에 머무는 기간도, 더 나아가 이 생에 머무는 기간도 어떻게 보면 잠깐 빌려서 사는 삶인데, 잘 관리해야 아름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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