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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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현상학

jo_nghyuk 2019. 1. 18. 05:38

그 프랑스인이 내 이름을 저녁, 하고 부를 때 나는 모든 윤곽이 흐물흐물, 뭉개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 프랑스 교수는 jo를 먼저 발음하고, ng가 자신의 나라에서 발화되는 방식으로 내 이름을 읽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jong hyuk종혁하고 발음할 것을 그 프랑스인은 jo nghyuk줘뇨끄라고  읽었는데, jong에서의 ng가 뒤로 밀려나면서 hyuk에 붙어서 마치 avingon*아비뇽의 ng처럼 새로운 화학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안경을 벗고 사물을 보듯이, 나와 너 사이에 모호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가득할 때가 있다. 분명한 것들이 힘을 잃고 곤죽이 되고 으스러지고 비틀어지는 저녁의 시간이 올 때가 있다. 온갖 창조성으로 가득한 시간. ng가 jo 뒤에 붙어서 종이 되기도 하고, hyuk 앞에 붙어서 녁이 되기도 하는 시간. 그리고 불분명해서 아픈, 그냥 곤죽이 되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체험할 따름인 그런 시간. 나는 그 시간을 땅의 시간이라고 부르려 한다. 혼돈하고 공허한 원래 모습으로,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비존재로 풀어져가는 헝크러짐과 웅크림이 포옹하는 시간. 

빛은 파편처럼 사방에 튀고, 불 끈 방 안에서 눈을 뜨고 보는 광경처럼 하얀 먼지와 조각들이 우글거리고 웅성거리는.

저녁은 어스름인가? 아니 애초에 이 어스름은 비존재의 현상이요 사태가 아니던지? 너는 그것을 규정할 수 있겠는가? 다시 한번 묻겠지만 약속이 아니라 바로 그 규정을 향하여 내달음질하며 손 안에 넣을 심산인 것인지?

어떤 것은 모른다,고 해야 맞을 일이다. 바람을 차라리 손으로 쥐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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