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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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Time travel

jo_nghyuk 2019. 3. 28. 19:07

교회에서 청년들을 담당하게 되면서 나는 저 나이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글을 썼었는가, 문득 궁금해져서 그 나이에 썼던 글들을 찾아서 읽었다. 놀랍게도 지금 분투하고 있는 테마와 상당부분 일치했다. 정직함과 거룩함, 이성과 감성, 긴장과 이완의 양극성 안에서 10년 전의 나는 치열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하나 대견한 것이 있다면 죄다 예수님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젊은날의 꿈과 갈망을 철없이 표현하는 풋내가 풀풀 나는 어린 청년이었던 것 같다. 뭐랄까, 저 어리숙함 뜨거움 앞에서 미소짓지 않을 수 없달까. 대체적으로 글은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치열하게 정직함으로 승부했다. 거룩함을 추구하고 추구했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경직되어지는 것일까? 왜 나의 거룩과 정직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까? 머리는 차가워지는데, 내 감성까지도 차가운 창고에 들어가 있는 이 개운치 못함은 무엇 때문일까?

젊은 나여, 한 수 가르쳐줄까. 사실 지금 매우 잘하고 있는 중이야. 처음부터 어줍잖게 유연하게 가다가 죄악의 길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보다 나는 정직하게 분투하다가 분하게 눈물 흘리고, 열심히 하다가 경직된 네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귀하다고 생각해. 걱정하지 말고 계속 고민해. 앞으로 삼천포로도 많이 빠지게 될거야. 그때마다 네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네 안에 어떤 뜨거운 것이 너를 그토록 고결하게 부르는지를 기억하고 돌아와. 그럼 너는 너를 인도하시는 그분의 손에 맡겨져서 그 언덕의 끝에 있는 망망한 바다를 만나게 될거야. 걱정하지 마, 단순하게 해. 사랑받고 있음을 의심하지마. 두려워하지 마, 열심히 싸워. 사실은 다 이길 수 있는 것들 뿐이야. 기본기를 충실하게 세워. 잔꾀 부리지 말고. 네가 모든 것을 그분에게 걸면, 그분은 생각도 못했던 엄청난 것으로 너에게 갚아주신단다. 몸에 힘을 빼. 너의 죄를 따라가지도 말고 너의 의를 따라가지도 말아. 생명의 바람이 불어가는대로 돛을 맡기면 바다 위를 걷게 될거야.

그 후로 십년동안 나는 기본기를 쌓아올렸다. 십년동안 주구장창 나의 글에 표현하듯 벽돌 한장씩 착실하게. 물론 착실하지 못할 때가 참 많았고, 넘어질 때도 많았다. 그러나 돌아온 시간을 돌이켜보면, 정직함은 배신하지 않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신비의 영역에 들어있는 말 한마디를 하자면, 내가 모든 것을 바치고 버릴때, 나는 되려 모든 것의 주인이 되고, 철저히 새로운 오늘에 돌입하게 된다. 기본기를 충실하게 채울때, 되려 형태가 사라지고, 자유로운 생명력이 가득함을 경험하게 된다. 젊고 어리숙했던 나는 의에 의해 경직되고, 죄에 의해 해체되는 양극 사이에서 많은 시간을 고민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말은 시간의 결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 무게와 깊이를 더해간다. 참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그 어떤 하나님의 일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지혜롭지 못하면 너는 너의 깨끗함으로 다른 이를 가두게 될 것이고, 종국에는 너 자신을 가두게 될 것이다. 거룩함의 상승과 긍휼과 사랑의 하강은 늘 유영하듯 곡선을 그려야 한다. 네 자신의 자의적인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너의 틀을 벗어나기도 하고 그 영역을 지키기도 하면서, 너는 계속해서 keep going해야 한다. 말그대로 하나님의 각각의 때에 맞게 차올라야 하는 것이다. 좌로 행하라 할 때 끝까지 좌로 가고, 이제는 우로 행하라 할 때 끝까지 우로 가고, 그 여로에서 죄인의 어쩔수 없는 치우침의 우발성이 드러날때 치우치지 말고 올바르게 행하라 할 때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눈을 똑바로 뜨고 단단하게 걸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시간을 다스리시고 모든 때를 관장하시므로 나는 그 시간의 청지기로서, 또 그 시간을 선물로 받는 자녀로서, 그분과의 관계성 안에서만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그래서 날이 갈수록 담대해진다. 내가 행여 틀린 것이 있다면 말해보라. 그리고 말해달라. 라고 말할 수 있는 투명함이 그의 색이 된다. 예수의 인격은 투명하다는 말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성품만을 담아내었고, 때를 따라 이끌어가시는 주의 음성에 순종했다. 광야의 유혹과 시험 한가운데로 성령이 이끌면 그리로 가고, 부패한 예루살렘의 한복판으로 이끌면 그리로 갔다. 나는 돛단배와 같이 내가 가고 싶은 곳에 키를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이 이끄는대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 항복의 과정에서 사람은 참으로 모든 두려움과 염려에서 해방되고 자유해진다. 

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경각심을 가지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죄인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또한 경직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나를 이미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이미 나와 화해하신 아버지 품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칭의는 성화의 힘이 되고, 성화는 칭의를 오늘의 것이 되게 한다. 성화 없는 칭의는 박제된 언어요, 칭의 없는 성화는 생매장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예수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사랑은 모든 간격을 좁혀버리고, 시간까지도 초월한다. 사랑하는 자는 수련하는 자보다 더 빠르게 몇계단씩 성장해버린다. 나는 그렇게 잔뜩 긴장한 10년 전의 나를 품고 응원해주고 싶다. 잘하고 있고, 계속 그렇게 가면 된다고. 

좋은 군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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