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4월 11일 저녁기도회 복기 본문
나의 개인공간에서나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한국에서 많은 선배들에 실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은혜가 너무도 자신의 욕심을 가리우는데에 쓰이는 것이 견딜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동료들은 네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우리는 원래 다 죄인이라고 설득하려 하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 신앙의 영웅에 대한 그림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그런 건 예수님밖에 없다고.
그래,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면 하나님은 대체 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참으로 솔직하게 나는 너무 힘들고 할수만 있으면 안하고 싶다고 피처럼 땀을 흘리며 왜 그렇게까지 열심으로 기도하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걸까? 왜 우리는 가현설적인 신성에는 집중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인성은 그렇게 얌체처럼 빠르게 지나쳐가는가?
나를 바꾼 신앙의 멘토는 피와 살이 있는 이들이었고, 말과 행실이 일치했으며, 믿음이 살아서 현실이 되는 이들이었다. 그 능력을 살아내는 정직한 본이 되는 멘토를 한번도 만난 적 없이, 내가 그 능력을 살아내는 삶을 오늘 포기하지 않을수 있을까? 그걸 안보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행위중심적 신앙이 아닌가? 그러나 그걸 한번이라도 스승에게서 보았다면 과연 그 길을 지나쳐버릴수 있을까?
정말이지 목소리를 아끼고 싶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도 노래하고 싶단 말이다. 그러나 뒤에서 끙끙대며 열심히 달려오는 후배 때문에 그럴수가 없다. 나는 도로를 포장하는 이다. 도로가 깔려있어야 더 쉽게 후배들이 달려갈수 있다. 나는 계속 묻는다: 여기서 내가 더 나아가게 해줄까, 그만 얘기할까. 그들은 계속 가자고 한다. 가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다.
숨이찬다. 그러나 멈출수가 없다. 그럴 겨를이 없다. 딴 짓할 겨를이 없다. 할 일이 너무 많다. 해야할 참된 것들이 너무 많다.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가자. 미친 사람처럼 질주하자. 사자들의 광포한 키스처럼 사랑하자. 나무를 구부러뜨리는 폭풍의 사랑처럼 그저 한 길을 가고 한 우물을 파자. 달릴 때는 달리자.
He is jealous for me
loves like a hurricane
I am a tree
bending beneath the way of this wind and mer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