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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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4월 11일 저녁기도회 복기

jo_nghyuk 2019. 4. 12. 03:45

나의 개인공간에서나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한국에서 많은 선배들에 실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은혜가 너무도 자신의 욕심을 가리우는데에 쓰이는 것이 견딜수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동료들은 네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우리는 원래 다 죄인이라고 설득하려 하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 신앙의 영웅에 대한 그림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그런 건 예수님밖에 없다고.

그래, 정말 그럴까? 정말 그렇다면 하나님은 대체 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참으로 솔직하게 나는 너무 힘들고 할수만 있으면 안하고 싶다고 피처럼 땀을 흘리며 왜 그렇게까지 열심으로 기도하셔서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걸까? 왜 우리는 가현설적인 신성에는 집중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인성은 그렇게 얌체처럼 빠르게 지나쳐가는가?

나를 바꾼 신앙의 멘토는 피와 살이 있는 이들이었고, 말과 행실이 일치했으며, 믿음이 살아서 현실이 되는 이들이었다. 그 능력을 살아내는 정직한 본이 되는 멘토를 한번도 만난 적 없이, 내가 그 능력을 살아내는 삶을 오늘 포기하지 않을수 있을까? 그걸 안보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행위중심적 신앙이 아닌가? 그러나 그걸 한번이라도 스승에게서 보았다면 과연 그 길을 지나쳐버릴수 있을까?

정말이지 목소리를 아끼고 싶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나도 노래하고 싶단 말이다. 그러나 뒤에서 끙끙대며 열심히 달려오는 후배 때문에 그럴수가 없다. 나는 도로를 포장하는 이다. 도로가 깔려있어야 더 쉽게 후배들이 달려갈수 있다. 나는 계속 묻는다: 여기서 내가 더 나아가게 해줄까, 그만 얘기할까. 그들은 계속 가자고 한다. 가는 기쁨을 알았기 때문이다. 

숨이찬다. 그러나 멈출수가 없다. 그럴 겨를이 없다. 딴 짓할 겨를이 없다. 할 일이 너무 많다. 해야할 참된 것들이 너무 많다.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가자. 미친 사람처럼 질주하자. 사자들의 광포한 키스처럼 사랑하자. 나무를 구부러뜨리는 폭풍의 사랑처럼 그저 한 길을 가고 한 우물을 파자. 달릴 때는 달리자.

He is jealous for me

loves like a hurricane 

I am a tree

bending beneath the way of this wind and mer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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