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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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4월 15일 저녁기도회 복기

jo_nghyuk 2019. 4. 16. 03:51

나는 정말 기쁘다. 제자들이 바로 서게 되는 것을 보는 것만큼 하나님이 듬직하고 이 사역을 하는 것이 기쁜 때도 없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그래서 어떤 일보다 값지다. 오늘도 제자 한명을 만나 물었다: 내가 너에게 부드러운 말을 해주기를 원하니 아니면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책망하기를 원하니. 정말이지 한번에 한명밖에 케어할줄 모르는 나는 바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효율성보다 사랑이라고, 한번에 한명이 아니고는 사람을 전폭적으로 서포트해주고, 힘을 부여해주고, 위로해주고, 견책해주고, 바로 세워주는 방법을 나는 찾아볼수가 없다. 

하나님은 내가 버릴때 새로운 것으로 주신다. 이삭이 어딜 가든지 판 우물에서 물이 나듯이, 나는 최근에 그러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파는 곳마다 물이 샘솟는다. 내가 그분과 관계가 확실하니, 어딜 가든지 복의 근원의 손길이 느껴진다. 목사님께서 다 버리면 희한하게 하나님은 다 준다고 할때 나는 푸하핫, 웃어버렸다. 그게 하나님 아버지의 품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만을 구하고 구할때 하나님은 최고의 것으로 베풀어주시는 진실되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이다. 내가 무엇으로 승부를 거는지 명확하고 정직하면, 나머지는 그분이 다 조율하신다. 그래서 답은 하나다. 최고의 것을 드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 이 선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내일도 정진하는 것.

몸을 구푸리고 크게 기도해서 숨이 찬 것 같아서 왜 내가 몸을 쭈그리고 해야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을 피고 담대하게 손을 뻗어 하나님을 선포하고 찬양했다. 왜 위축되어야 하지? 왜 눈치보아야 하지? 왜 두려워해야 하지? 나는 거침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이다. 사람이 참으로 정직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담대함을 선물로 주신다. 자유함을 선물로 주신다. 나는 그 담대함과 자유를 가지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문둥병이 나았을때 예수 앞에 다시 돌아온 그 한사람처럼 되고 싶다. 나에게 주신 담대함과 자유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는 그런 작은 사람이 아니라, 주신 것을 예물로 다시 그분께 돌려드리는 사랑을 보여드리고, 표현하고 싶다. 왜 작은 삶을 살아야 하지? 왜 그저 그런 소소한 삶에 만족해야 하지? 더 큰 것을 예비하셨다면, 정직함으로 받아 누리고 그분의 섭리의 결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 믿음 아닌가?

나는 정말 기쁘다. 내가 먼저 금강석처럼 되고 나니 나의 제자도 금강석처럼 되는 것을 본다. 역으로, 너무 열심으로 따라오는 제자 때문에 똥꼬가 찔려서 더 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그 녀석이 참 고맙고 기쁘다. 이렇게 이 땅에서 한번에 한 사람씩만 키우는 방식으로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다이아몬드처럼 순전해질수 있다면 나는 정말 하얗게 타버려도 하나도 아쉽지 않고 기쁘게 산화해버릴 것만 같다. 부디 몇 놈만 더... 나는 최고의 것, 진실한 것, 뜨거운 것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너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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