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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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5월 9일의 수기, Voilà!

jo_nghyuk 2019. 5. 9. 23:17

독일에서의 to-do가 다 끝났다. 수요예배를 인도하고 나서 영적으로 매우 상쾌한 동시에, 육체의 기어를 조금씩 내려서 휴식해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집에 와서 조용히 고기를 구워먹고, 토트넘과 아약스의 경기를 보다가 아약스가 두 골을 전반에 넣는 것을 보고 노트북을 닫고 외국인청에 낼 서류를 아내와 함께 작성한다. 서류가 다 구비된 것을 확인하고, DAZN에 들어가 보았더니, 아 글쎄 brésilien 루카스 모우라가 두 골을 넣어놓은 것이 아닌가. 경기는 20분이 채 남지 않았고, 육신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보고야 말았다. 

90분의 시간이 끝나고 주심은 5분의 연장시간을 주었다. 5분이 다 끝나고, 5분 1초가 될 때, 루카스의 발 끝에서 골이 하나 더 터졌다. 루카스는 기독교인 같은데 연신 기뻐하며 '이건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고 고백했다. 루카스의 골이 95분 1초에 터질 때, 팽팽하던 끈 같은 것이 파열하는 듯 했고, 아약스의 선수들은 하나둘씩 그라운드에 쓰러지듯 눕기 시작했다. 그걸 또 극적으로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데, 나중에는 다 경기장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나는 설교 때 전한 메시지를 떠올렸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얍복 강가의 야곱처럼, 이미 허벅지 관절이 나간 상태에서 씨름을 하더라도, 이기지 못할 싸움인 것을 알더라도, 이기지는 못해도, 포기는 하지 마십시오. 끈질기게 붙들고 싸우는 자에게만 승리의 아침이 옵니다. 십자가의 어두운 밤을 뚫고 나간 자에게만 부활의 아침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포기하는 순간 끝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그것은 지속성을 지닌다. 어쩌면 나는 화해 연구 안의 시간론에 이 통찰을 가져올 지도 모르겠다. 시간 수행자와 시간성의 구성자인 그리스도인이 포기하지 않을 때, 화해의 현실성은 여전히 가능성으로 개방되어진 채 지속의 공간성Zeiträumlichkeit을 지니게 될 것이다. 네가 그것을 매면 땅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그것을 풀면 땅에서도 풀릴 것이다. 

오늘 외국인청에 갔는데 서류상으로 명시된 장학금 기간이 올해까지여서, 2년 더 연장이 가능하다고 써 있는데도, 원칙적인 독일 암트 직원이 올해 12월까지만 비자를 준다. 2년 연장의 현실성Wirklichkeit을 나는 누리는데 서류만 보는 이는 가능성Möglichkeit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사는 화해의 현실성과 세상에서 보는 화해의 가능성의 관계는 이러한 것이 아닐까. 세상은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살아냄으로서 증명하고 내보여야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숙원 사업인가보다. 그래, 증명해 보여주마. 재밌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서, 이 Stipendium이 어떤 효력이 있는 것인지 보여주고 말리라. Voilà!, 살아있는 현재 그 자체에 대해 후설Edmund Husserl은 보라!Siehe고 기술할 수밖에 없는, 현상 그 자체의 사실성을 피력하였다. 나는 계속 달리고 달려서 연장 시간을 계속 얻어내는, 생장하는 초록의 이파리로 살아내리라. 11월에 연장된 장학 증서를 내보이며 말해야지: Siehe! 봐봐!

Est-ce que á Moura? Non, c'est á Lui.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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