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5월 16일 수기, 교토에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5월 16일 수기, 교토에

jo_nghyuk 2019. 5. 22. 19:25

나는 신칸센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정갈한 주택과 말끔한 맨션들이 지나간다. 서울에서의 5박 6일은 불면 플러스 근면의 시간이었다. 잠들기 전까지 일을 하고, 일어나면 일을 했다. 그 사이에 그래도 지인들을 꼬박꼬박 만나려고 했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도 나누고 정도 나누고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냈다. 

하루카를 타고 교토로 가는 길을 나는 좋아한다. 간사이 해협 위를 달리고, 신오사카의 굵직굵직한 도심 건물들을 관통하여 달리다 보면, 가지런히 산의 능선이 물결치고 듬성듬성 검은 목조 가옥들이 등장한다. 서울의 나는 연장전이 끝날 때까지 싸우는 축구 선수와도 같았다면, 지금은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 마냥 칼피스와 화과자를 먹으며 교토를 향하고 있다. 

하루 정도는 아무도 없는 산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온천을 하고 싶다. 지역 된장으로 만든 나베 요리를 한번 더 먹자. 그리고 산보를 하다가 돌아와 몸을 씻고 글을 쓰자. 방에 엎드려 잠을 자고, 가모가와 강변에서 지용처럼 목놓아 울어보자. 나는 교토가 조용함을 위해 찾아온 자에게 지독한 고독감을 비싼 입장료로 요구하는 곳임을 잘 안다. 

빼곡했던 서울의 5일을 뒤로 하고, 나는 교토의 5일을 텅 빈 채로 놔두고 싶다. 그렇게 비어진 공간에 나를 살며시 놓아 두고 싶다. 상처가 난 개처럼 산골로 들어가고 싶다. 모든 요청에 Jawohl로 대답해야 했던 긍정성의 과잉을 뒤로 하고, 문을 닫고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안녕히 계세요.

료안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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