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5월 17-21일 수기, 균형점을 찾다.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5월 17-21일 수기, 균형점을 찾다.

jo_nghyuk 2019. 5. 22. 20:19

이미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열흘이 빠르게 지나갔다. 교토에서 지나치게 행복해서 수기를 작성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을 하고 편의점에서 산 계란 샌드위치와 커피등을 마시고, 고운 린넨 셔츠와 바지를 챙겨입고 이치조지나 교토조형예술대학 근처 동네를 산보했다. 지인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더 조용해져버려서, 전차를 타고 북부의 깊은 산자락으로 들어가 온센을 하고, 히에이 산 정상에도 오르고, 교토 남동부 산의 겨드랑이까지 들어가 유도후를 후후 불며 먹었다. 셀프 유폐의 만끽. 

숙소는 작은 교회였다. 2층에 20명 남짓을 수용하는 예배당이 있었고, 1층에 화장실과 거실 그리고 작은 방이 있는 전통 가옥이었다. 새벽이면 좁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 삐걱이는 마루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몸을 씻고, 산보를 나가는 그런 리듬이 참 좋았다. 숙소 앞에는 전차가 지나는 길이 있고, 반대편으로는 가모가와 강이 있다. 아침 저녁으로 산보를 하면서 나란 사람이 무얼 좋아하는지를 다시 깨달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교수님이 학술회를 참석한다고 하셔서 도시샤 대학을 15년만에 방문했다. 지용과 동주의 시비도 찾아보고, 일본어로 번역된 지용의 압천(가모가와)도 천천히 읽어본다. 3-4일이 지나니 잠들었던 일본어도 제법 활성화가 되어서 미용실 선생님과 수다도 떨고 택시 기사와 잡담도 나누며 소소하게 살았다. 

밤에 비가 오면 괜시리 샤워를 하고 새 옷을 입고 한번 더 나가보게 된다. 돌아와서도 아쉬워 문을 열어놓고 어둠이 깔린 거리를 멍하니 쳐다본다. 교토에 와서 유독 멍하니 있는 때가 많았다. 료안지에서도 그랬고, 난젠지에서도 그랬다. 사람이 없을수록 머리를 디폴트 값으로 맞추기에 적절했던 것 같다. 교토에 오기 전에 바쁜 일정으로 힘들었는지 가모가와 강변에서 울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문득 하곤 했었다. 슬픈 정서 같아서 마음 한 구석으로 밀어넣어 두었는데, 그 정서가 은각사 앞의 철학의 길을 걸으면서 고개를 빼꼼, 내밀길래 다독여주었다. 힘든 것을 견디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다독이는 시간이 있어야 균형이 맞는 법이다. 가모가와 강변을 걷는데 지용이 말했던 물냄새가 나서 좋았다. 조용히 느리게 살다보니 잃어버렸던 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도 집으로 돌아왔다. 

회복이란 그런 것이다. 조용히 바깥의 것들에 문을 걸어 잠그고, 긍정할 것을 긍정하되 부정할 것을 부정하면서 조용히 나라고 하는 곡선을 그어나가는 것이다. 내 몸이 말하는대로 그 내재율대로 그려가다 보면, 다른 무엇이나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 그대로 현존하는 그 자체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사람은 회복되어져가는 것이다. 세상은 사람을 너무 틀에 넣고 맞추려고 한다. 사는 데에 있어서 틀이라는 것은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틀이 사람을 구속하기도 해서, 그때야말로 자유와 구원의 경험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서울에서 시키는 것을 다 해주고 교토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나는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난젠지 앞의 블루보틀에서 사온 3 Africas를 내려 마시는데 적당히 가볍고 산뜻해서 쾌청하다. 균형이라는 것은 어쩌면 서로 다른 극점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 과하게 되지 않도록 잡아주기도 하고 서로의 특별점들을 격려하기도 하는 공동체적 상태가 아닐런지. 아무쪼록 가장 나답게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서 또 너무 느려지지 않으면서 온화하게 주어진 시간들을 잘 살아가야겠다.

이치조지 역,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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