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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수기, 냉각팬이 계속 도는 이유

jo_nghyuk 2019. 5. 26. 01:24

이 맥북을 중고로 산지 6개월도 되지 않았다. 이베이 중고 벼룩시장을 통해서 450유로를 주고 샀는데 이제는 켜기만 해도 냉각팬이 시끄럽게 돈다. 2011년형이라 연식이 오래 된 감도 있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CPU에 부하가 걸리는 작업을 너무 많이 했다 싶다. 모든 하드웨어는 감당할 수 있는 총량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지금 내 컴퓨터는 매우 쇠약한 상태인듯 하다. 

이번에 교토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니 여행이라기보다 정주함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면서 몸이 다시 많이 좋아짐을 느낀다. 한국에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모두가 호흡이 매우 짧고 불규칙하다는 것이었다. 지금을 살면서도 동시에 다음 시간에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내일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고, 며칠 뒤의 처리할 일들까지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뜨겁게 CPU를 돌린다. 그렇게 멀티태스킹으로 과열된 CPU를 냉각팬으로 식히면서 계속 하드웨어는 뜨겁게 달궈진다. 마라톤을 단거리 경주처럼 뛰는 느낌이다. 사회가 그렇게 구동되고 있으니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과부하가 걸린 채로 달릴 따름이다. 

이런 방식에는 총량의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어서, 금세 하드웨어가 소모되고 말 것이다. 50대의 나이에 이미 90대 할아버지 몸 상태라는 판정을 받은 아버지의 경우를 나는 떠올린다. 쉬는 법을 모르면 냉각팬을 돌리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는 외길로 스스로를 내몰수 밖에 없다. 쉬지 못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작은 것에 시선이 빼앗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독일에 오니 제일 마음이 편하고 표정도 몸가짐도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누구도 신경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무신경함'이야말로 물 속의 물고기처럼 사람의 몸을 편안하게 풀어놓는다. 한국이나 일본에 가서 받는 첫 인상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타자를 의식하면서 몸가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며칠 뒤에는 그러한 몸가짐을 알게 모르게 하고 있고 말이다. 

조금 무신경하게, 흐트러진 채로 살아야 나라고 하는 연산장치가 공간감을 가지고 작업을 개시할 것이다. 쉼이 올 때 사람은 소비를 통한 안정감이 아니라 무위 자체에서 오는 현존의 안정감을 경험한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사들이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좋은 것이다. 그것을 누릴 때에야 비로소 나라고 하는 존재가 현전화하는 현상 자체를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조금 더 옷장을 비우고, 소유를 비워야겠다. 사들였던 것들을 좀 더 흘려보내고 무거웠던 존재를 가벼이 만들어야겠다. 본질을 꼬집어야 현상이 바뀌지, 염려하고 애쓴다고 바뀌지 않는다. 

히에이산 정상에서, 천천히 그리고 혼자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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