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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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6월 3일 수기, 적응

jo_nghyuk 2019. 6. 3. 21:31

오랫만에 도서관에 온다. 워드로 작성해놓은 아우구스티누스 단상들이 컴퓨터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셨다. 클라우드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컴퓨터가 영원할 줄 알았나. SSD에 넣어두었던 것이 SSD와 함께 소멸하고야 말았다. 스스로 이렇게 빈틈이 많았나, 하면서 오늘은 자책도 많이 한다. 

한 달만에 목사님을 만났다. 주일 설교를 듣는데 기마병 같이 억세다. 멀찌감치 앞으로 달려나가는 이를 오랫만에 만나니 도전도 받고 반성도 된다. 독일에 돌아와서 일주일간 아침 저녁 로마서 강해를 했었는데 목사님깨서 갈라디아서로 설교하시는 내용이 나의 것보다 더 쌩쌩하고 강력하다. 사양 차이가 많이 나는 컴퓨터 같이 느껴진다.

또 이 날의 찬양인도는 어찌나 맥북처럼 고요하고 힘이 있던지. 인도하는 집사님께서 힘을 빼고 하는데 힘이 필요한 부분들에선 적확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깊은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예배가 영과 진리의 예배라고 다시 체감한다. 

아무튼 도서관이 더워서 집에 가고 싶은데도 그냥 앉아 있다.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책상에 줄기차게 앉아 있는 것부터 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내 뇌와 몸을 책상이라는 공간에 다시 길들여야 한다. 시차의 적응은 끝났지만 공간적인 적응은 아직 하지 못한 느낌이다.

독일은 선선한 날씨가 없는가. 일본에선 선선한 봄이었는데, 돌아와보니 나에게는 추웠고 어제 오늘은 또 너무도 무덥고 뜨겁다. 이것도 내가 적응해야 하는 일이다. 내 몸과 영혼아, 적응하느라 참 고생이 많다. 조금만 더 읽다가 아이스 커피라도 한 잔 마시러 나갔다 와야겠다. 

 

난젠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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