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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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6월 11일 수기, 가볍게 더 가볍게

jo_nghyuk 2019. 6. 11. 19:28

미니멀리즘 에세이를 듣는데 물건을 비운다고 저절로 삶이 변할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듣고나니 오히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워가면서 단순성의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단순함이 좋다는 것을 알아서 비우는 것은 더 지혜로움의 결이 아닌가. 정직성과 지혜로움은 함께 간다는 잠언의 말처럼 단순성과 지혜로움은 해석학적 순환 안에 들어가 있다. 

차라리 자유해지면 물건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쓰고 없어도 있는 것처럼 넉넉하다. 노트북의 내용을 가볍게 하였더니 삶의 공기질이 쾌청해져서 좋았다. 조이패드를 그래서 바자회에 내놓았더니 아무도 사가지 않았다. 녀석을 다시 집에 가져오는 것이 여간 내키지 않았다. 복잡하고 명민하게 문제를 풀려고 하면 계속 그 복잡성의 망에 거한다. 그러나 본회퍼의 말대로 '단순성의 지혜'를 얻고나면 그러한 것은 문제가 아니게 된다. 인간은 욕심 때문에 늘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존재이다. 자기 위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삶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고서 복잡성의 그물은 결코 벗을 수 없다. 진리는 쉽지 않지만 단순하다.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는 방식도 그러하다. 먼저 그러한 복잡한 현실성에서 떠나게 한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관리하고 염려sorgen하지만, 내가 삶의 통제권을 쥐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맡기고 떠나는 여정으로 먼저 부르신다. 여러가지를 고민하고 염려하지만 중요한 것은 한가지만으로도 족하다고 예수는 CPU가 뜨거워진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자꾸 여러가지를 하면 과열되고 주변을 데이게 한다. 그것을 우리는 번아웃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내 노트북도 번아웃이 되더니 눈이 멀고 가쁜 숨을 씩씩, 몰아쉰다. 이것을 설치하라,는 명령에도 불복종하고 그냥 뜨겁고 시끄럽게 돌아갈 뿐이다. kernel task라고 하는 CPU가 과로하지 않도록 하는 분산작업이 일거리가 없는데도 혼자서 공포의 유령에 질려서 열심히 돌아간다. 릴케의 소설에 나오는 말테의 유년시절처럼 혼자 무언가 압도적인 것에 사로잡히고 억눌려 무서워하는 모양이다.

프랑스어를 신청했는데 한 달동안 듣지를 못한다. 두 주는 한국과 일본에 있느라, 두 주는 선생이 아파서 못했다. 리쾨르를 불어로 읽고 싶어서 신청했었는데 아침에 우연찮게 프렌치 프레스 (그 이름도 프렌치!)를 프레싱하다가 폭발한 커피에 손목이 데인 후에 잠깐 삶을 톺아보게 된다. 지나치게 탁월한 지식인 행세를 하려던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우아하게 물 위에 떠있으려고 수면 아래서 발버둥을 치던 것은 아니었는가. 아닌 척 해도 독일어로 진행하는 박사논문의 시간을 침범하는 것이 사실이다. 나름 시간관리 해야지 했는데 화요일 오후는 그걸로 CPU가 돌아간다. french pressing이다. 다른 사람의 삶에서 기름기를 빼주는 목사요 신학자인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분간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우발성coincidence에 과하게 민감한 것인가. 분명한 것은 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 그 작업을 중지해야 지속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을 위해 부수적인 것을 멈추는 것은 깨어있는 깊은 지성이다. 압박수비를 벗겨내는 것은 Besonnenheit이다.

교토조형예술대학, 2019. 공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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