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6월 18일의 수기 2, Tu vais bien?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6월 18일의 수기 2, Tu vais bien?

jo_nghyuk 2019. 6. 19. 00:52

프랑스어 수업에 다녀왔다. 5주나 빠졌는데 다행히 여전히 쉬웠다. 지난 주에 논문에 집중하려고 빠지게 되면서 아예 못 갈 각오를 했었는데, 그럼에도 가게 된 경위는 이렇다: 도서관 카페테리아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데 프랑스 가족이 내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커피를 가져오려고 내 가방을 좀 지켜달라고 했고, 다녀와서 merci, 라고 했을 뿐인데, '이 사람 프랑스어를 하네?'라고 서로 말하길래 '네, 아주 조금'이라고 말하면서 대화에 시동이 걸려버렸다. 

그들은 리스트 음대에 다니는 아들을 방문하기 위해 Aix-en-Provence(아니 심지어 프로방스)로부터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너 세잔을 아니?' 응, 아주 좋아하지. 대화를 하는데 프랑스어를 향한 신의 윙크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바람이 솔솔. 나는 섭리를 믿으며 담대하게 프랑스어반에 다시 들어갔고 놀랍고 기쁘게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수업 진도를 따라갔다. 시험을 포함해 마지막 두 주를 이탈리아 여행으로 인해 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선생은 가볍게 반배치 시험을 보고 다음 단계로 들어오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휴, 다행이다. 처음 고민할 때 빡세게 할 심산으로 a1.2 반에 들어갔었다면 꽤나 고생하고 했던 수업을 또 들어갈 뻔 했다. 

매이지 않고 프랑스어를 배우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그럼에도 프랑스어를 배울 수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 프로방스 사람들도 만나고, 텀블러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지인이 넣어주는데 기막히게 진하게 만들어주어서 교토 동양정에서 마셨던 미칠듯한 아이스 커피가 생각나버렸다. 냉동되었던 감성들이 다 살아나버리고, 감각들에 꽃이 핀다. 아아, on va bien! 행복해서 죽어버릴 것 같은 하루여서 수기를 한번 더 쓰지 않고서는 배길수가 없다. 그동안 어플로 공부했던 단어와 표현 복습도 꼼꼼하게 해서 다음달에 파리에 가서는 꼭 자신있게 준비했던 파를을 다 발화하고 와야지. 굴욕을 또 당할지언정 기뻐서 너무 좋아서 표현할 수 밖에 없구나. J'aime du français! 벌써부터 다음 겨울학기 수업이 기대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 몸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감각들 때문에 간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적이 있다. 그 뜨겁고 아름다운 것들을 드가처럼 나는 부끄러워 차게 식히곤 했고 발레리나 앞에 선 그처럼 차마 그것들을 마주하지 못했던 일이 참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나에게 환희에 찬 고뇌와 같다. 프랑스어 때문에 내 머리 CPU가 엄청 뜨거워졌지만, 언어와 그림은 날 너무도 행복하게 한다. 음악하는 사람 앞에선 할 얘기가 별로 없지만 그림을 그린다거나 문학을 한다고 하면 난 마냥 들뜬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사실 아무 일도 아닌데 미친 놈처럼 행복하다.

나에게만큼은 별 일이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