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1월 26일의 수기, 존재 그 자체로 본문

오랑쥬 껍질 씹기

1월 26일의 수기, 존재 그 자체로

jo_nghyuk 2020. 1. 26. 21:59

늘 정해진 시간에 도서관에 온다. 오늘도 개인 연구실을 빌려서 논문 진행을 하는데, 담당 직원 분이 내 방 문을 노크하시더니 빈 연구실이 있다고, 여느 때처럼 매일 여기 올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 그렇다고 대답하고 서류에 서명을 하고 새 열쇠를 받는다. 이전 방과 다르게 밖으로 크게 난 창으로 공원과 공원을 가르지르는 다리가 보이고, 백조나 사람들이 뒤뚱뒤뚱 걸어가는 풍경을 받아들이는 그런 공간이었다. 뜬금없이 나는, 독일 유학을 오기 전 노트북 화면에 있던 하이델베르크를 떠올렸다. 거기에는 숲이 있었고, 강이 있었으며, 교회가 있고, 풍경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 산을 올라야 하는, 그런 도시였다. 

점심 식사를 한 후 나는 공원 산책을 했다. 한시간 여를 걸으며 논문 주제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돌담길로 난 풀들과 그 위로 내려앉는 쨍한 태양을 바라보기도 했다. 문득 베르나워로 2년간의 휴양을 떠났던, Edmund Husserl을 생각했다. 철학자는 휴양지에서도 철학을 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의 조교 Rudolf Bernet를 통해 편집되어 출간된 책이 <베르나워 원고 Bernauer Manuskripte>이다. 그는 1917년부터 1918년까지의 2년간의 휴식기 동안 1910년까지의 시간론에 대한 사유의 도약을 한번 더 하게 되는데, 돋보이는 지점이 미래지향에 대한, 그리고 각각의 지금에 대한 연구의 명확화였다. 그의 사상은 휴가지에서 진일보하였던 것이다. 매우 실험적이고 착상으로 가득한 이 원고는 음반으로 치면 라디오헤드의 <Kid A>처럼 나에게는 느껴진다. 죽기 전까지 철학함을 그치지 않았던 그는, 휴가지에서도 책 한 권 분량의 사고훈련을 그치지 않았던 거다.

나는 철학함에 대한 그의 엄중한 자세와 더불어, 그가 휴식 기간 동안 철학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사상의 배양은 사실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건, 풀들과 나무들을 보고, 그 위로 내려앉는 태양광을 응시anschauen하는 것과 같은 시간을 또한 필요로 하며,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소중한 사람들을 돌봐주며, 많은 약한 존재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말하자면 전존재적이며 윤리적인 어떤 것이기도 한 것이다. 형이상학은 책 속에 있지 않고 존재자들에 깃들어 있으며, 존재자와 존재자가 만나 서로 감응하는 데에서 출현하는 그러한 것이기도 하다. 존재 그 자체로! Zu dem Wesen Selbst!

그러다보니 나에게 주어진 향후 2-3년 간의 시간은 휴양지에서 신학하는 시간과도 같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이곳에 연구공간을 가지고 있으며, 25키로 바깥에 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매일 1.6유로를 내고 점심식사를 하며 강 건너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신학함을 하고 있다. 신theo에 대해 연구logie하는 길은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나 있다. 그것은 직선도로인 동시에, 많은 우회로를 그 안에 담고 있으며, 그 우회로는 사랑의 선택을 통해서만, 말하자면 가장 자발적인 감응의 방식을 통해서만 거닐게 되어지는 오솔길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나치게 내달리는 때가 아니라 더 느리게 생각하고 또 (타자에 의해서) 느려지는, 기꺼이 비효율적으로 되기를 꺼리지 않는 이 낮고 조용한 길을 지날 때 내 연구와 문장이 아름다워지지 않겠는가, 하는 확신을 스스로 갖게끔 되나보다. 

 

겨울이야말로 연구에 몰두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닌가.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