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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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8월 20일의 수기, 아듀 레비나스

jo_nghyuk 2020. 8. 21. 06:01

참 오랜만에도 글을 쓴다. 글이야 논문을 통해 늘 쓰고 있지만 스스로의 내면으로 내려가서 푹 꺼진 소파에 눌러앉듯 자신을 톺아보는 것이 오랜만이라는 말이다. 

아침에 5시 30분이나 6시에 눈이 떠진다. 30분 거리의 시내에 있는 기도처에 걸어나간다. 숲길을 골라서 한적한 주택가를 골라서 사람이 없는 공간을 고르고 골라 몸을 밀고 나간다. 아침에 산책은 개운하고 저녁에 아내와 하는 숲길 산보는 상쾌하다. 

보난자에서 엘 살바도르 커피가 왔는데 와인 맛이 나서 놀란 마음에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갓 볶은 원두인데 지금 먹어야 할 것 같다고. 지인을 불러서 감탄하며 한 번 더 마셨다. 보통은 3-4일에서 일주일 사이에 숙성이 되면서 맛이 깊어지는게 로스팅의 묘미인데 산딸기 같은 이 원두는 따자마자 깨물어 먹을 때의 싱그러움처럼 갓 볶았을 때 먹는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재즈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저녁예배를 함께 드리고 피자를 먹고 닌텐도 게임을 조금 하고 배웅을 해주었다. 

논문 카피텔 2를 끝내고 드디어 교수님에게 40페이지 가량을 첨부해서 보냈다. 드디어 내 손을 떠났다. 4페이지 남짓 되는 소결론을 고치고 또 고치고 윤문하고 재구조화하고 블록 놀이처럼 이렇게 저렇게 결합하고 해체하기를 반복하고 읽고 또 읽고 쓰고를 반복하다가 끝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두의 숙성 기간이 끝나듯이 로스팅이 끝나듯이 에스프레소 머신의 물줄기가 끝나듯이 끝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뉴스를 보면 많은 낡은 것들이 끝에 도달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망령이 되어도 끝을 맺지 못하다가 시대가 전환해버리고 정말로 끝에 다다른 느낌. 솔로몬이 오래된 저 고전에서 말하듯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그 때가 도래하면 사람은 손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다. 욕심이 추한 얼굴을 드러내기 전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좀체 브레이크 페달을 쓸 줄을 모르고 그래서 우리는 늘 여기까지 오고야 만다. 

싱그러울 때에 멈출 수는 없는 것인가. 아름다울 때에 절제할 수는 없는 걸까. 왜 추하고 역해질 때까지 방향을 틀지 못하는 걸까. capable man과 fallable man 사이에서 늘 아래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다름아닌 자유의 남용이다. 기도가 부족할 때면 그런 공간감이 결핍됨을 늘 느낀다. 내가 아니라 남에게서 그걸 느낄때면 참으로 안타깝다. 자기도 숨을 쉬지 못하고 남의 숨도 턱 막히게 하는 삶은 나를 참 슬프게 한다. 미워하지 말고 손을 모아 기도할 뿐이다. 

아내의 출산 계획을 따라 한국에 가려던 계획을 접고 비행기 표를 캔슬했다. 200유로를 하늘에 날려버렸지만. 괜한 스트레스에서 자유해져서 차라리 홀가분하다. 

가지려고만 하면 계속 매일 것이다. 미니멀리즘은 내 성향이 아니고 내 푯대이다.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훈련하며 살아야 좋은 삶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에도 프랑스어를 10분 공부해야겠다. 아듀, 레비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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