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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워는 어디였을까

jo_nghyuk 2022. 2. 10. 21:26

베르나워 강연원고로 잘 알려진 후설의 후기 시간이론은 그가 베르나워에서 보낸 2년간 집필되었다. 하이델베르크를 다녀오고 나서 사실은 그곳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 산책, 커피, 숲 속을 거닐기, 현상학 자료 읽기 등이 후설이 그의 휴양지 베르나우어에서 했던 일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후설을 보자마자 이 인물은 중요한 사상가이다 라는 것을 간파했던 레비나스처럼 나에게 있어 후설은 매우 각별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레비나스의 꿈결같은 글쓰기보다 명징한 후설의 문체가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헬라어 시간보다 라틴어 시간을 나는 더 즐겼던 것 같다. 라틴어 문장의 모든 알파벳들은 저마다의 방향의 지향성을 정확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고꾸라지는 소유격, 직선적인 대격, 샘물 같은 탈격.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지향하는 바와 다르게 나의 글이나 행동의 연쇄는 자꾸 엉성한 보폭으로 다른 방향을 달리고 있는 때가 많다. 하이델베르크에 대해 내가 개념적으로 하리라, 고 마음 먹었던 것들은 사실상 실재 속에서 대부분 뭉개져 버렸다. 지양은 생각 전체를 포괄하며 외화는 것이어늘 나의 뭉개점은 생각의 발현보다는 생각의 소외 또는 포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바이마르로 돌아와 숲 길을 걸으면서 나는 커피를 마신다. 논문 생각을 하고, 팟캐스트로 미국인의 미니멀리즘 강연과 독일인의 환경문제 토론 등을 들으면서 2키로 정도를 걷는다. 배가 고프면 광장에서 브랏부어스트를 사 먹는다. 전세계적으로 원두 가격이 올랐다는데, 광장의 커피는 1유로면 내 손으로 하여금 온기를 쥘 수 있게 해준다. 걷던 중 토고에 사는 프랑스어를 쓰는 친구와 남아공에 사는 독일인 친구로부터 온 메일 알림이 울린다. 이처럼 현대스러운 산책 중에 나는 후설의 베르나우어의 산책이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그의 커피는 집 밖에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며, 그의 음악도 집 밖을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밖에서 팟캐스트를 듣기는 커녕, 전보나 전화, 그리고 대부분 편지를 통해서 다른 대륙의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침착해졌을 것이고 에반스의 손처럼 차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숲길을 걸으며 정태적인 시간의식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의식 속의 역동적인 기억과 기대의 맞물림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느리게 걸었을 것이며, 빛보다 빠르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건축자처럼 문장을 촘촘히 쌓아올렸을 것이다. 

이곳이 나의 베르나워이다. 내가 걷고, 생각하고, 커피를 마시고, 느리게 연락을 확인하고, 광장에 나오고, 다시 뱀 길 같은 숲길을 걷고, 책 속에 파묻혀 생활하는 이곳이 나의 베르나워이다. (심지어 이 도서관에는 후설의 유작을 포함한 전집이 비치되어 있다)

가끔 혼자 논문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사유가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문제는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혼자서 그것이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해 아래 새 것은 없고 애송이는 여전히 길을 잃을 뿐이다. 엄정함 속에 거할 줄 모르는 창의성은 에메르송처럼 아리송한 크로스를 올리고 아군을 방해한다. 어서 빨리 지도교수를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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