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2월 25일 저녁기도회, 누가복음 24:1-12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2월 25일 저녁기도회, 누가복음 24:1-12

jo_nghyuk 2022. 3. 2. 15:30
2월 25일 저녁기도회
찬송 510 통 276
  • 하나님의 진리 등대
말씀 누가복음 24:1-12
  •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습니다. 향품을 가지고 갔는데 이는 시체가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를 중화시키기 위한 역할을 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갔는데 그 향품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덤 입구의 돌은 굴려 옮겨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는 찾을 수가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여기서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갑자기 예수님 앞에 주님이라고 하는 퀴리오스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승리자이심을 이미 선포하고 있는 암시이기도 합니다. 승리자 주님은 향품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죽음에 삼키우지 않고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은 여전히 근심합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찾지 못함을 인하여 근심합니다. 향품도 바르지 않고 세마포에 싼 것이 걱정되어 왔는데 시체마저 없어진 것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여인들 곁에 섭니다. 이들은 천사들입니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이 서 있을까요? 저는 성경에서 두 사람 이상부터 증인이 될 수 있는 구조에 먼저 집중하고 싶습니다. 이들은 예수의 살아계심의 증인으로서 부활의 현실을 증언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말합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인들이 예수를 찾을 곳은 무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천사들이 말합니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이 계신 곳은 죽은 자들의 곳이 아니다. 예수님은 생전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주님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인간의 불가능성 가운데에 갇혀서 울고 있는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말합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이미 말씀하시지 않으셨느냐?”
 
그제서야 그 말을 들은 여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베드로를 비롯해 많은 제자들은 죽으신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잊고 있었던 예수님의 말씀을 천사들이 기억하게 해줍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 암송을 우리가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가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승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찾을 분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으로서 만나야 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승리자 예수님은 나의 삶에서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의 예수님이시지만 그 십자가의 예수님은 부활하신 분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부활의 능력은 부활절의 아침의 기쁨과 해방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세상 권세에서, 죽음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이므로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향품을 준비할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주님을 다시 맞이할 등불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인들이 이 엄청난 소식을 사도들과 다른 모든 이에게 알렸다고 하는데, 11절을 보니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슬픔에 잠식되어 버리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 매몰되어 버려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바르게 기억하는 능력입니다. 그 말씀을 과거의 망각의 바다 속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살아 역사하실 수 있도록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을 우리는 ver-gegenwärtigen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 너무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며, 지금 역사하시는 Gegenwart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려면 하나님의 시간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빛의 시간이며 하나님의 시간은 살아있는 현재입니다. 나의 시간, 세상의 시간에 휘말려 살다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살아계심을 사도들처럼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 내가 믿든 믿지 않든 이미 엄연히 일어난 현실이며 지금 살아 역사하는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들 중 베드로만 유일하게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은 것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각에 가두어지지 않으시고 그분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 예수의 시체는 찾을 수 없다” 오늘 성경이 말합니다. 그분은 죽지 않으시며 영원하신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어디서 찾고 있습니까? 슬픔에 젖어 흐린 눈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그 불가능한 현실을 깨뜨리고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하고 기억해서 내 영혼에 새겨야 합니다. 말씀의 묵상은 주의 언약의 기억의 반복입니다.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합시다. 살아계신 주님의 놀라우심이 우리 삶 안에 역사하시고, 죽음 권세를 깨뜨리시고 생명의 놀라운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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