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2월 28일 저녁기도회, 누가복음 24:36-53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2월 28일 저녁기도회, 누가복음 24:36-53

jo_nghyuk 2022. 3. 2. 15:30
2월 28일 월 저녁기도회 
찬송 487장 통 535
  •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설교 누가복음 24:36-53
  • 몸의 부활, 세상의 회복
 
부활하신 예수님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아침에 설교에서 나누었던 엠마오에 있던 두 제자와 함께 계실 때에는 그들이 예수를 알아볼 때에에 갑자기 사라지시기도 하시고, 지금은 36절을 보니 엠마오에서 두 제자가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에 갑자기 나타나시기도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자유롭게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무서워합니다. 갑자기 사라지고 갑자기 나타나니, 귀신인 줄 압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살과 뼈를 가졌으며 귀신이 아니라고 하시며, 나를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한 세상 한 복판에서,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육체 안에서도 성령의 채워짐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 육체를 가지고도 경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질그릇 같은 육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고난을 겪는 우리에게도, 그리고 우크라이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믿고 고백하는 어디에나 현재하십니다. 
 
육체 가운데에서 부활신앙을 믿는 이것은,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연대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 것은 너도 이방 나라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네가 이집트에서 고난을 당한 것을 기억하라. 네가 몸을 가졌은즉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라”
우리가 몸을 가지고, 고통을 겪고, 아픔을 겪으며, 그 중에서도 부활신앙의 능력으로 사는 것은, 동일하게 아픔을 가지고 신음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해야 하는 책임 앞에 우리를 세웁니다. 우리가 만약 다른 사람이 부르짖을 때에 잠잠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에 침묵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 상한 자들 앞에 얼굴을 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자들의 하나님, 약한 자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을 반드시 기억하고 상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육체를 가지시고 아파할 줄 아시고, 배고파 하시고, 눈물을 흘리실 줄 아시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활 후에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시고,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이신, 몸을 가지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의 아픔에 무감각하지 말아라. 다른 이의 슬픔과 고통에서 눈을 돌리지 말아라.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셨으며, 사도행전에 보이듯이, 여전히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49절을 보면,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몸을 가지고 있고, 그 몸으로 어느 공간에 있어야 하는지도 예수님에게는 중요하였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회개가 성령의 큰 역사로 일어나기 위해, 그들은 가장 먼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거기서부터 회개의 역사가 성령의 파도를 타고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몸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회복하는 것이며, 세상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회개로 이끌어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멸하기 위함이 아니요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몸을 가지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 모두의 회복을 주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몸을 가지고 고통을 입는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며, 코로나로 인해 몸을 가지고 고통을 입는 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리고 그 예수님에게서 축복을 받은 후에,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이들의 슬픔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의 부활로 인하여 큰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애통한 후에 위로 받고, 십자가 후에 영광 있다고 우리는 찬송했습니다. 이들의 찬송도 그러하지 않았을까요?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도다, 우리의 겪는 고난 후에 더 큰 영광의 기쁨이 있도다. 이들은 종말론적인 기쁨을 가지고 찬송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것은, 우리의 이웃들이, 고통을 겪는 이 땅의 나그네와 같은 이들이 슬픔에서 풀려나, 고통에서 풀려나, 이 부활의 기쁨과 치유 가운데로, 빛 가운데로 들어오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몸을 가지고, 성령의 부으심을 받아 이 세상 속에, 이 시간 속에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이 땅의 등대, 이 시대의 등불로서 빛을 발하기 위함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이르렀고”
하나님은 명하십니다. 부활 신앙으로 일어나 기도하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생명의 능력이 어둠을 깨뜨리고 죽음을 깨뜨리도록, 이 시대를 위하여 기도하라, 명하십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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