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3월 15일 새벽기도회, 로마서 1:1-7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3월 15일 새벽기도회, 로마서 1:1-7

jo_nghyuk 2022. 3. 15. 00:44
3월 15일 화 새벽기도회
찬송 516장 (통 265)
  •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말씀 로마서 1:1-7
  • 새롭고 산 길로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로마서의 시작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문안인사로 시작합니다. 바울도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았고, 편지를 받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라는 단어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 부르심은 세상으로 바울을 파송하시는 부르심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는 사도로 부르심ㅁ을 받고,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1절은 보내심을 받은 자의 소개이며 중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내용이고, 우리가 읽은 마지막 6-7절은 편지를 받는 자들, 즉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 대한 문안 인사로 되어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바울이나,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나 모두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듯이, 성도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삶으로 우리 모두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회자이든 아니든 직분자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주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은 주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그의 사랑하는 자로 부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5절에서 자신이 "은혜"와 "사도됨"을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그가 사도된 것도 주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가 보내심을 받은 것도 주의 은혜입니다. 바울은 은혜로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주의 은혜의 역사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무엇을 전합니까? 공허한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인하여 생명의 시간이 죽음의 시간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어둠 권세 안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밀치고 들어왔다. 이제 우리는 죄에 노예된 자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과 평강을 누리며 자유한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너희는 소외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세상과 자기를 화해하셨으며, 사망 속에 빠진 이들을 살리신다는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약속의 성취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약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약속되었던 것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알리는 복된 소식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생명나무는 아직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생명나무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십니다. 복음에는 남녀노소, 빈부, 계급의 차별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억눌린 중에, 병에 걸린 중에 더 복음의 길은 활짝 열립니다.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열리는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말하듯이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라는 것은 복음의 진수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만을 전하지 않습니다. 그 십자가에 달려 세상의 죄와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부활하셨다는 소식은 우리가 믿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시간 한복판에서 벌어진 엄연한 사건이며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전하는 것이지, 형이상학적인 부활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새로운 현실성입니다. 이전에는 죄와 사망의 현실을 경험했다면, 이제는 예수로 인하여 의와 생명, 부활의 현실 속으로 걸어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현실이 우리의 현실 한복판에 들어오셨고, 우리의 현실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동은 이미 트기 시작했고, 아침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새 시대의 사람이라는 것,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입고, 그의 은혜와 평안함을 선물로 받아 누리는 자들이라는 것은 복음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다시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퍼져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그래서 동시에 보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여전히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곳, 여전히 소외된 이들, 가난하고 병든 이들, 억눌린 이들이 있는 곳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복음은 퍼져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우리는 이 복음 때문에 전진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둠을 뒤로 하고 나아갑시다. 고난을 뒤로 하고, 슬픔을 뒤로 하고 나아갑시다. 주님의 기쁨이 앞에 있습니다. 환한 아침처럼, 제자들이 아침에 만났던 부활하신 그 예수님처럼, 우리 앞에서 생명의 주님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심으로 우리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우리의 새 시간이 돌입하였습니다. 승리합시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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