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3월 16일 새벽기도회, 로마서 1:8-17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3월 16일 새벽기도회, 로마서 1:8-17

jo_nghyuk 2022. 3. 16. 14:47
3월 16일 수 새벽기도회
찬송 286 통 218
  •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말씀 로마서 1:8-17
  • 하나님의 의
 
8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감사로 시작합니다. 그것은 로마에 있는 교회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울은 쉬지 않고 로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 이유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주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1:1-7에서 우리는 바울이 은혜로서 사도직을 받았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 말은 자기의 힘이 아니라 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도직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자기의 힘으로 로마교회를 섬기고자 함이 아니라 그들에게 흘러가야 하는 어떤 영적인 은사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로마교회를 사랑하셔서 그들을 견고히 하고자 하시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교회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로마교회는 큰 분열과 갈등 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이처럼 죄된 로마교회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바울을 통해 로마교회로 가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와 은사, 사랑을 나누는 것을 그것을 갚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전에 복음을 핍박한 만큼,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빚을 갚는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빚을 지지 말라"한 것처럼, 바울이 진 빚은 사랑의 빚일 것입니다. 이전에 원수되었던 자기를 사랑하신 하나님에게 진 그 사랑의 빚을 갚고자 로마 교회로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받은 은혜가 바울에게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 큰 은혜를 바울은 계속해서 이웃들에게로 흘려보내려고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로마로 가고자 하는 것이 그들을 견고하게 하고자 함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2절을 보니 바울의 믿음과 로마교회의 믿음이 서로를 위로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의 교제는 한편으로 서로를 견고하게 해줍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를 위로해줍니다. 서로를 견고하게 해주고 서로를 위로해주면서, 13절이 말하듯이 신자들은 열매 맺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믿음과 사랑의 나눔은 서로서로를 열매맺는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막힌 담을 허무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서로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심으로, 우리 모두는 한 가족입니다. 성격이 맞든 맞지 않든, 국적이 어떻든, 성별이 어떠며, 연령이 어떠하든, 생활 형편과 가정 환경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 한 가족을 돌보는 것, 한 가족을 견고하게 하고, 이 한 가족을 위로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를 열매 맺는 삶으로 이끌어줍니다. 형제에게서 숨어 얼굴을 가리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싫어하신다고 구약 선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헌금하는 것도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경을 초월합니다.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픈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엄청난 능력을 자랑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 복음입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으며 경계도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우리의 의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우리의 의는 사람들을 갈라놓지만, 하나님의 의는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시고, 회복케 하시고, 살리십니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이 두 믿음은 그래서 학자들에 의해 이렇게 번역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함에서 우리의 믿음이 성취됩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단어는 신실함으로도 번역이 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신실함이 우리의 믿음을 완성하시지, 우리 자신의 의나 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로마서가 말하는 복음입니다. 
복음, 기쁜 소식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이 우리의 믿음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죄된 로마교회를 찾아가게 하시고, 그들을 만나 견고하게 하시며, 위로하게 하셔서, 그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로마교회를 회복하신다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의는 모든 죄인을 사랑하시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끔찍한 원수를 용서하시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의롭지 못한 자를 불러 회개케 하여 의롭게 되게 하는 의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 덕분에,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다시 선물로 받고, 회복의 살 길을 선물로 받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셔서, 우리가 견고해지게 하시고,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우리가 위로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서로서로를 돌아보아 우리 모두가 열매 맺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이 놀라운 사랑이 복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사랑이 오늘 저와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여 많은 죽은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며 서로서로를 견고케 하는 열매 맺는 삶으로 이끌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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