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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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레 알리가 그때 무리뉴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jo_nghyuk 2022. 3. 30. 22:48

요즘은 시집을 구글 북스에서 구매해서 epub으로 변환하여 킨들에 넣어 읽는다. 지인에게 중고 서점에서 시집 열 권을 구해달라고 부탁하려다가, 조용히 유로화로 디지털화된 시집을 구매하였다. 공룡 기업에서 할인을 받아 시집을 결제한 데에 대한 죄책감이 조금은 든다. 시집 한 권을 팔아서 자신에게 500원이 돌아온다는 시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집을 디지털화하였다고 해서 시에 담긴 내용까지 데이터화되지는 않은 듯 해서 안도감이 들었다. 시가 주는 감동은 그대로였다. 

새로운 방법론의 새순이 돋는다. 2022년에 쓰게 될 논문의 마지막 챕터는 리쾨르의 서사적 주체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파리에서 여름에 열리게 될 워크샵에 스피커로 참석하기 위해 리쾨르의 책에 나온 아우구스티누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후설 그리고 하이데거의 시간의 양상에 대해 영어로 정리하는 중이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원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책으로 읽고 독일어로 쓰여진 논문들의 내용을 이제는 영어로 옮겨적고 있다. 한글 번역도 있지만 성긴 데가 많아서 독일어와 프랑스어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갈 수 밖에 없었다. 장 마르크 교수는 내가 그 책을 독일어로 읽는다니까 독일어 번역이 dumm하니 프랑스어로 읽는 것이 낫다고 불평하였다. 아니 왜 책 한 권을 4개 국어로 읽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교수는 한 책을 5번을 읽되 모국어를 포함한 각각의 언어로 한 번씩 읽을 것을 권하였었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다음 학기 프랑스어 인텐시브 수업을 수강신청해두었다.

연구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소설가의 표현처럼 시간이 내 편이 되어야만 한다. 시간이 내 편이 되어주기까지 인내하며 그 작업에 천착해 들어가야만 한다.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고된 노동의 시간과 사유하는 시간, 노동에서 풀려나는 시간과 다시 쟁기를 손에 쥐는 작업을 반복하며 몇 년이 지나면 허름한 박사논문 한 편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생했을 시인의 손에서 나는 그 시집의 가격을 흥정하여 내 손으로 가져온 것이다. 남의 밭에서 몰래 상추라도 뜯어온 심정이다. 그 상추로 나는 개걸스럽게 제육을 싸먹는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하면 애초에 중고 서점에서 지인을 통해 시집을 구매했다면 시인의 손에는 인세가 50센트도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가 한 일은 도적질은 아닌 셈이다. 그저 시인에게 돌아갈 인세가 여전히 걱정될 뿐이다.

코로나를 앓았다. 덕분에 스케쥴러의 3월은 공간을 상실해버렸다. 이 공간은 빈 공간이 아니라 3월에 구성했어야 하는 그 안의 것들을 상실함으로 진공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며, 그러므로 3월은 말소되어 버렸다. 나는 3월을 그냥 버텼다. 침대에 누워서 수백 번의 기침을 하고, 수십 병의 생수를 마시고, 수만 단어의 글을 읽었다. 3월이 끝나가는 이 마지막 주가 되어서야 도서관에 나와 여름의 워크숍을 위한 초록을 작성 중이다. 다시 커피를 마시고, 공원을 돈다. 작은 도서관의 방에 한 달동안 버틴, 근육이 다 빠져버린 몸뚱아리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모니터 속으로 단어들을 적어넣고 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는다. 델레 알리가 그때 무리뉴의 충고를 들었다면, 그래서 자신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허영과 게으름과 부단히 싸웠다면, 그래서 허영과 재능이 주는 up과 게으름이 주는 down이 그려대는 진폭의 그래프를 치열하게 감소시켜왔더라면, 지금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간은 게으른 자의 편이 아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만이 훗날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들 수가 있다. 나는 많은 것을 얕게 가지고 싶지 않다. 가장 귀한 것 하나를 손에 넣고 싶다. 그래서 땅을 파는 손에 피가 흘려도 땅을 파내려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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