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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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쥬 껍질 씹기

joyeux courageux!

jo_nghyuk 2022. 4. 21. 00:35

참 이상한 일이다. 성금요일에 나는 철저히 불가능성 앞에 서 있었다. 재를 뒤집어 쓴 심정으로 철저히 nobody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 탄 바로 그 자리에서 보석을 발견했다. 

논문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사실은 방향성과 의욕을 많이 상실해버린 상태였다. 마지막 챕터에 들어갈 내용은 이미 전 챕터에 다 있었고, 더 이상 무엇을 써야 할지가 막막했다. 내리막길을 자전거 위에 앉아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의 우울감은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라 이미 연료가 다 타버린 듯한 심정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어려운 논리 연구 수업도 가기 싫고 김나지움에서 수년 간을 프랑스어를 배워온 독일 여대생들 사이에서 배워야 하는 프랑스어 수업도 가기 싫었다. 파울 틸리히 수업도 가기 싫었고 그냥 도서관에 앉아 남은 챕터의 내리막길을 굴러가고 싶었다. 아무런 의욕이 없이. 그냥 데굴데굴.

파리에서 열리는 리쾨르 학회 워크숍에서 주기로 한 답신의 시한이 사흘이나 지나버린 어느 아침, 나는 사소한 근력 운동으로, 연약하지만 반복적인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나는 체력도 좋지 못했고 멘탈도 약했지만 근력 운동과 기도는 나의 육체와 영을 서서히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허리 통증 때문에 시작한 30분 간의 아침 운동이 이렇게 큰 유익을 줄 줄은 몰랐다. 육체의 훈련에도 유익이 있으나 경건의 훈련은 범사에 유익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30분 간의 운동과 30분 간의 기도는 나를 오뚜기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근력 운동을 마친 그날 아침 문득, '후설의 논리연구 수업도 너의 철학함에 있어 근력운동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의 생각이었을까, 내 안의 그 분의 생각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고 기뻐하기로 했다. 나는 불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회피는 나를 영원히 지루한 현재에 가둔다. 늘 그래왔었고, 또 그럴 예정인 자기반복의 현재는 감옥이다. 그러나 기쁨과 용기는 미래를 열어주고 영원으로 나아가게 한다. 희망은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논리 연구 수업도 씩씩하게 듣고, 유창한 독일 언니들 사이에서 프랑스어도 씩씩하게 배우기로 했다. 그러다가 오늘 새벽, 리쾨르 학회에서 매우 늦은 답신이 왔다. 기뻤다. 그러나 더 기쁜 것은 나의 기쁨과 용기가 그것 이전에 이미 그 분으로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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