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7월 22일 설교, 로마서 8:16-27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7월 22일 설교, 로마서 8:16-27

jo_nghyuk 2022. 7. 22. 05:08
7월 22일 금 새벽기도
찬송 429 통 489
  •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말씀: 로마서 8:16-27
  • 희망 가득한 탄식, 기도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가 그 권세를 누리며 산다면 우리의 삶은 밝고 즐겁고 가벼워야 하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것을 상속할 때 고난도 함께 상속받는다고 오늘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고 죄짐을 지신 것이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가져가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보여주신 본은 우리가 따라서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라고 어제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은 승승장구하는 삶이라기보다는 낮아지는 삶이었고 고난을 받고 수치를 받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을 받고 수치를 당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나희덕이라는 시인이 있습니다. 나희덕 시인은 기독교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시 중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사랑의 다른쪽 면에는 수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것을 한 기독교 영성가의 말을 따라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랑은 곧 벌거벗겨지는 것이고 상처에 노출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떠올려봅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죄인을 사랑하심으로 수치와 상처를 입으십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순종하지 않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수치와 상처를 입으십니다. 사람들은 보통 먼저 사랑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주고 용납해준다는 인식이 오면 마음을 엽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누군가를 사랑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알기 때문입니다. 먼저 사랑하면 무방비 상태가 되고, 상처를 받게 될 것이고, 때로는 이용을 당할 것이고, 내 자아가 수치로 가득해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사랑에서 오는 상처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이며 하나님의 죄인 사랑임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예수님과 함께 상속자가 된다는 것,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그러므로 예수의 이러한 사랑과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3절에서 말하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도 탄식한다는 이 말은, 우리가 생명과 성령의 법 아래 있는 동시에 죄와 사망의 권세에 놓인 세상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썩어질 것, 허망한 것, 즉 죽음을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우리도 신음하며 살아가는데, 성령의 열매를 받지 못한 세상은 어떻겠습니까? 모든 피조물이 다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다고 바울은 22절에서 말합니다. 그 누구도 동떨어져서 이 탄식에서 자유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며, 우리 모두는 아파할 줄 아는 몸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나처럼 몸을 가지고 있고 아파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피조물은 지금 하나의 세계 안에서 탄식하고 아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성령님 또한 우리 가운데에서 탄식하고 있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동떨어져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픔 한 가운데에서 함께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심으로 일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파하는 동시에 희망의 역사를 열어가십니다. 그 탄식은 오히려 놀랍도록 희망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하는 자는 기도합니다. 희망하기 때문에 아파하고 탄식하지만, 희망하는 자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희망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기도한다고 오늘 바울은 말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희망하는 자입니까?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을 희망하는 자들입니까? 그렇다면 함께 기도합시다. 희망하는 자는 아파하지만 불평하지 않습니다. 희망하는 자는 탄식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희망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것을 참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리기 때문에 지금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시는 동시에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서서 중보하십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우리와 우리가 만나기 위해 성령님은 가운데 서서 탄식하시며 동시에 기도하십니다. 그가 가운데 서서 탄식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중보하시고,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를 놓지 않으십니다. “희망하는 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는 탄식하지만 희망하는 그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오늘도 눈물로 씨를 뿌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오늘 로마서는 하나님의 상속자인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 바로 이 희망에 가득찬 탄식의 길, 기도의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보자가 많은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중보자가 많은 성은 무너지지 않으며 중보자가 많은 국가는 망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저와 여러분이 희망의 탄식으로 무너진 담을 다시 수축하는 회복의 역사의 통로, 하나님의 통로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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