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7월 24일 설교, 로마서 8:28-39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7월 24일 설교, 로마서 8:28-39

jo_nghyuk 2022. 7. 25. 11:03
7월 24일 새벽기도
찬송 310장 통 410
  • 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 로마서 8:28-39
  • 나의 생각보다 넉넉히 이기시는 하나님
 
 
[롬8:28-39]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인생의 어려운 일이 올 때나 걱정 근심거리에 차게 될 때면 시야가 매우 좁아집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치이며 겨우 살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중요한 것은 시편 121편의 기자가 고백하듯이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찬양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아라 너의 도움 어디서 오나 천지 지으신 너를 만드신 여호와께로다.” 
나의 힘으로 모든 것이 버거울 때 28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자에게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허락을 벗어나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좋은 일 뿐 아니라 내가 보기에 좋지 않은 일도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나의 실패와 나의 실수까지도 하나님은 쓰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은 크십니다.
나의 생각보다 크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눈을 들어 산을 보고 천지를 지으신 크신 창조주를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이나 어려움을 만나면 쉬이 낙심하고 움츠러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없는 것처럼 시야가 좁아집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고난 가운데에서 주님의 손을 붙들고, 이 고난을 내 삶에 허락하신 하나님께 묻고 그 뜻을 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 편지를 받는 로마 성도들은 환난과 박해와 어려움 가운데에 처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환난과 박해와 어려움을 피할 길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종일 도살당할 양 같이 산다고 성격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박해는 믿는 자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우리가 그것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어떻게 이 아픔과 고난을 넉넉히 이깁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그 확실함에서, 넉넉히 이기는 능력이 시작됩니다. 나를 향한 모든 정죄와 비난을 없애주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나를 받으신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좋은 날씨와 환경 가운데에서 우울증은 거의 생겨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뜻한 사랑과 격려를 받는 사람은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몸의 내부 시스템은 우리가 만나는 바깥의 환경과 조응하며 이루어집니다. 좋은 환경에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보다 더 큰 환경은 무엇입니까? 바로 천지를 지으신 분이 나를 위하고 계시며, 나를 사랑하시고,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큰 사실이 내가 겪는 일들을 작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나를 내가 이 땅에 존재하기 전에부터 알고 계십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산의 나이는 우리보다 많습니다. 나의 아버지 때에도 산이 있었고 할아버지 때에도, 그 위 조상 때에도 그 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을 아주 오래전에 지으신 영원하신 이가 나를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나를 하루 하루를 겨우 사는 생에서 이끌어내어 줍니다. 그리고 나를 창세 전에 만물을 지으신 분 앞으로 데리고 갑니다. 나의 생은 덧없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넉넉히 이긴다는 것은 고난이 나의 삶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내 삶에 지속적인 고난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을 더 크게 경험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나의 마음과 인격이 단련되어집니다.  
우리는 좁아진 시야를 다시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나의 작은 삶, 덧없어 보이는 나의 짧은 인생에서 눈을 들어서 주님을 바라봅시다. 눈을 들어 산을 볼 뿐 아니라 그 산을 바다에 던지기도 하시는, 산을 옮기시는 능력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내가 고난 중에 연단을 받고 이 고난을 주님과 함께 넉넉히 이겨야 할 한 가지 이유가 또 있습니다. 내가 승리한 고난은 나를 만들 뿐 아니라 나의 후손들, 나를 뒤따라올 사람들이 견고하게 붙잡게 될 본이 되어 줍니다. 승리한 모세 뒤에 승리한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나의 계획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크신 계획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위해 합력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 쓸데 없는 자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위해 쓰십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빛을 비추는 자로 쓰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약해질 때 이렇게 고백합시다.
“주의 사랑으로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은 나의 생각보다 넉넉하게 이기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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