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꼴라쥬

7월 27일 설교, 로마서 10장 본문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7월 27일 설교, 로마서 10장

jo_nghyuk 2022. 7. 26. 21:18
7월 27일 수 새벽기도
찬송 492 (통 544)
  •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말씀 로마서 10장
  • 중보하면서, 보내시는 곳으로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열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별개로 열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에게 열심이 있기 때문에 의를 세우기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와 별개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에는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된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율법의 완성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율법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율법이 자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말하자면 새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은혜의 새 시대가 열림으로 율법은 마침이 되었고, 하나님의 의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새 시대가 열림을 분간하지 못합니다. 율법의 시대가 마침표를 찍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열리지 않는 문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사람처럼 율법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 율법의 의를 행하는 사람은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의를 얻은 사람은 내가 율법으로 행하여 의를 얻는다 하지 않고 그리스도가 이 율법을 완성하셨다 고백합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말은 오직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또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음을 의미합니다. 율법을 성취한 자로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벗어난 죄인인 우리를 위해 대신 죽음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초에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실 때에 이 말씀이 하늘처럼 너에게서 멀어서 지킬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바다 끝처럼 멀어서 지킬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지킬 수 있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모든 상황에서 모든 율법을 지킬 만큼 의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율법을 성취하시고 율법의 마침이 되신 후에, 율법은 더이상 정죄의 기능을 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이제는 율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바울은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는, 주의 말씀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접근 가능하며 오는 자를 막지 않습니다. 천국 문은 이제 열렸습니다. 네가 마음으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은혜는 차별이 없으며 하나님은 그를 부르는 모든 자들을 가까이 하시고 멀리 하시지 않으십니다. 
13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9장에서의 이스라엘의 선택받지 못함에 대한 딜레마가 이제 은혜의 복음에 의해 해결이 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주께서 그를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어떠한 사람이든지, 어떠한 모양이든지, 강하든 약하든 차별 없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복음은 선택과 예정의 문제를 넘어서서, 그것을 전하는 자들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게 됩니다. 
14절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전파를 해야 듣는다는 것입니다. 들어야 믿을 수 있지, 듣지 않고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포커스가 된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15절에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시고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내가 임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가 보내시고, 주가 내 안에서 역사하실 때 복음이 전파됩니다. 우리가 행동 이전에 중보기도를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가셔서 길을 준비해두실 때 우리가 보내심을 받아 가서 전하고 거기에 주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전했는데도 받지 않은 것은 그들의 자유의 문제입니다. 16절: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18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전하는 자는 주가 전하시는 곳에 가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복음의 사역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주가 하라고 하시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그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무거워지지,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하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무겁고 부담되는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되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싹이 언제 날지 모르지만 계속 씨를 뿌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21절: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받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는 보내는 곳에 가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모두가 구원을 받도록. 그러나 우리가 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에 가야한다는 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해 고통받고 근심하며 눈물을 흘리며 중보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는 차별을 두지 않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대로 갔습니다. 이스라엘로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고집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지 않자, 바울을 먼 이방나라들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구원받음을 보고 질투나게 하기 위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순서는 우리가 고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방법도 우리가 강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주의 뜻대로 행하고 기다리면 됩니다. 결국 복음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가라 하시면 원치 않아도 가야 하고, 멈춰서라 하면 가고 싶어도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길은 언제나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만 열립니다. 바라건대 우리의 기도가 쌓이고 말씀에 대한 순종이 쌓여서 주가 가시는 길을, 주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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